기부금의 생활화 - 박대훈목사(청주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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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의 생활화 - 박대훈목사(청주서문교회)
  • 승인 2000.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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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기부자 대부분은 ‘중산층 샐러리맨들로 보통 사람이 낸 한푼 두푼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미국의 최대 자선 단체인 ‘유나이티드 웨이’는 말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등 갑부들만 기부하는 것으로 비쳐지지만 이들 부자들이 내는 돈은 전체 기부금의 5%에도 못미친다고 한다. 이처럼 미국 사회의 기부금 출연의 축은 중산층인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인 한 사람의 1년 기부금 평균액은 6백41달러(약 77만원)로 한국인의 약 1백 배를 넘고 있다. 미국 전체 기부금 모금액 중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77.3%로 일반인의 98%가 매년 어떤 형태로든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도 75%의 국민이 매달 기부금을 내고 있는데 개인이 이렇게 내는 돈이 법인 기부액의 20배나 된다고 한다.

선진국의 경우 봉급에서 일정액을 자동이체하는 기부 방식이 보편화되어 있어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도 본국에서 하던 대로 기부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월급에서 자동으로 일정액을 기부하는 기부 방식이 국내 기업에서도 서서히 생겨나고 있는데 한국 굴지의 모 전자회사는 95년부터 월급에서 한 달에 1천원 미만을 자동이체하는 방법으로 거두어 지금까지 6억여 원의 모금액으로 근육병 어린이 치료센터 건립 등에 기부했다고 한다. 회사 직원 57.4%의 참여율을 보인 이 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생명도 전체 직원의 90%가 참여해 매달 1천6백만원 정도의 기부금으로 전국의 소년 소녀 가장과 독거 노인들을 돕는다고 한다.

기부 문화가 외국의 경우처럼 생활화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국내 여러 회사들의 기부 참여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생을 어렵게 생활하며 번 돈을 기꺼이 대학에 기부한 할머니들의 미담이 작년 한 해 온 국민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평생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생명과도 같은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했다. 그 당시 보도로는 ‘할머니 한 사람이 내놓은 돈이 그 대학의 1년 전체 기부자 중 1위를 차지한 현실은 내놓고 자랑하기 부끄러운 얘기’라고 했다.

벤처 붐이 일면서 성공한 벤처 기업가들이 후배들의 벤처 창업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1백억 원의 기금을 지원한 일, 학문으로 번 돈을 학교로 돌려야 한다는 환원 정신으로 모교인 서울대에 1백억 원 대를 기증한 교수, 조선대에 2백억 원 대의 뉴욕 빌딩을 기증한 어느 화백의 미담, 이미 고인이 된 남편의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10억을 장학금으로 쾌척한 여교수, 목회자의 손자인 재미 사업가가 서울신대에 33억을 기증한 일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미담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훈훈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 전문가들의 이야기로는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는 아직 ‘눈물 짜내기식’의 감정적인 기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간지마다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모금을 하고 있다. 독자들은 기사를 접하며 연말이 가까웠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불우이웃돕기 모금운동을 위해 방송사 및 언론사와 그 외 관련 기관들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게 된다. 취지가 좋은 만큼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기다리면서 어렵게 모금한 기부금이 소외된 이웃에게 귀하게 쓰여지길 바란다.

외국의 경우 본인 자신은 평생을 가난하게 생활하다가 임종 직전에 거액을 자선 단체나 소속된 교회에 기부하는 부자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의 기부로 인해 비영리 단체와 교회는 왕성한 사회 활동과 구제를 벌여 지역 사회 발전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번 돈이라고 해서 다 내 것인 양 허례허식과 과소비를 일삼는다면 그것은 양식 있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내 조국과 부모, 한 인간의 지적 사고에 눈을 뜨게 해 준 수많은 스승과 친지와 이웃, 내가 소속한 사회와 교회 등 주위를 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나 혼자 힘으로 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을 깨달을 때 감격하며 감사할 수 있게 되고 이웃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남한 인구의 1/4이라고 한다. 21세기의 한국 교회는 그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활로 실천할 수 있도록 일깨우는 일이 급선무다.

교회는 특수층(갑부 등), 중산층을 비롯해 사회 지도층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다. 이들이 기부에 대한 의식의 전환을 가져올 때 기독교를 보는 사회의 눈이 달라지게 된다. 이제는 한국 사람들의 기부가 극빈 계층의 생존 지원 차원을 벗어나 문화, 과학, 사회복지, 의료, 예술 등 각 분야에 쓰여질 때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의 질을 꾀할 수 있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은 ‘나 쓰고 난 다음’, 또는 ‘좀 더 벌어서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남을 돕는 일은 쉬운 일같아 보이지만 마음을 비우는 자기 희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 땅에 사는 동안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많은 것을 맡겨주셨다. 내가 가진 재산, 재능이 내 것이 아님을 알 때 사회로의 환원 정신이 꿈틀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기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을 임시로 돌보고 가꾸는 ‘청지기’라는 것을 알아 ‘주께서 쓰시겠다’고 할 때 기꺼이 돌려 드릴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자세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빛의 사명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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