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새 삶에 도전하는 한 청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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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새 삶에 도전하는 한 청년의 꿈
  • 현승미
  • 승인 2005.03.02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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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얼굴 예쁘네요”에 출연하는 장애인 배우 강민휘
 

  “장애도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 엄마 이경숙씨와 아들 민휘군. 엄마는 다운증후군 아들을 만능 재주꾼으로 키워냈다.<사진=김찬현 기자>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2월. 방학을 맞아 조용하던 대학 캠퍼스에 오랜만에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활기가 넘친다. 누군가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들, 혹은 졸업하는 주인공들까지 저마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순간을 작은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영화배우 강민휘 씨 또한 예외는 아니다. 부모님, 여자 친구, 같이 수업을 받았던 친구들부터 4년 동안 정든 교정, 심지어는 매점 아저씨와도 한 컷.


‘나사렛대학교 재활학부 인간재활학 전공 2005년도 졸업생 강민휘’라고 적힌 졸업장을 받아들고 학사모를 쓴 그를 바라보는 부모님은 아들이 그저 대견하다. 아이들의 작은 표정, 몸짓 하나에도 감동을 받는 것이 부모들의 마음이라지만 이들 가족에게는 더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


사실 강민휘 씨는 선천성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정신지체의 일종인 다운증후군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지능이 낮아 사회 생활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그를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진학시켰다.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민휘가 다운증후군이란 걸 알게 됐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발육이 좀 늦는다는 거 말고는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어요. 세 살 때부터 보내기 시작한 놀이방과 미술학원에서도 또래 아이들과 잘 지냈거든요.”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또래친구들에 비해 학습능력도 떨어지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오해를 사는 등 속상한 적이 많았다.


이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았을까, 아니면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하게했던 부모님의 고집 덕분일까? 특수 학급이 있는 고등학교를 찾아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고등학교 3년 동안 그는 기숙사 생활을 훌륭히 견뎌냈다. 인내심 강한 그의 모습에서 더 큰 희망을 품게 됐던 부모님은 한번 더 욕심을 내 대학에 진학시킬 결심을 하게 됐다. 중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에서는 학업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도 함께 배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지만, 그 또한 쉽지만은 않았다.


“요즘은 대학에서도 장애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새롭게 만들 정도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모두가 신체장애자들을 위한 것이지요. 우리 민휘는 정신지체라는 이유로 입학 불허 통지를 수없이 받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강 씨가 다녔던 고등학교 특수 학급 선생님이 나사렛대학교를 추천했고, 신학과에 입학 할 수 있었다. 전체 학생의 20%정도가 장애인이지만, 이곳 역시 정신지체자를 학생으로 받아들인건 그가 처음이었다.


여느 엄마들 못지않은 이경숙씨의 이러한 아들에 대한 각별한 기대와 관심은 그를 오히려 만능 재주꾼으로 키워냈다. 강 씨는 춤, 노래는 기본이고 농구, 수영부터 피아노나 플룻 연주도 수준급이다. 붙임성 좋고, 재주 많은 그는 어느덧 학교의 명물이 됐고, 3학년 때는 인간재활학과로 편입까지 하게 됐다.


4학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많은 친구들이 취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즈음 그에게는 ‘영화배우’라는 새로운 세계가 문을 두드렸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 등 사람 냄새 나는 잔잔한 이야기를 그려냈던 박흥식 감독의 새 영화 ‘엄마 얼굴 예쁘네요’에 출연할 다운증후군 배우가 필요했던 것이다. 박 감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장애인 연기자들을 길러내고 있던 연예 기획사에 의뢰를 하게 됐고, 여섯 차례의 오디션 끝에 ‘재명’역에 그를 캐스팅 했다.


“작년에 있었던 장애인 연기자 선발대회에 민휘를 처음 봤어요. 가능성은 있어보였지만, 저희도 지체 장애자에 대해선 확신이 없어서 탈락시켰거든요. 근데, 영화사의 연락을 받고 당장 민휘를 떠올렸어요.”

한 달 간의 연기 수업으로는 무리가 있었지만, 영화사와 여러 차례의 미팅 끝에 그의 재능을 확인시켜 줄 수 있었다던 가나엔테테인먼트사의 김은경 대표는 사실 그의 재능만큼이나 신실한 믿음에 더욱 반가웠다.


“원장님, 원장님! 전 하나님, 예수님이 너무 좋아요.”

김 대표에게 어린아이의 천진한 모습으로 하나님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을 했던 강민휘씨. 그는 교회에 가는 주일이면 하나님 앞에 제일 멋진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인다.

“언젠가 한번은 서울에서 함께 주일예배를 드릴 기회가 있었어요. 11시 예배를 위해 회사 앞에서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8시 50분에 민휘가 전화를 했어요.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나오라는 거예요.”

1시간도 넘게 일찍 나와 김 대표를 당황하게 했던 강 씨는 학교부흥집회에서도 그 누구보다 뜨거운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곤 했다. 미리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는 기독교학교였던 대학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영접하게 됐고, 그 누구보다 신실한 주님의 종이 됐던 것이다.


그에게 이제 하나님은 영화배우라는 새로운 도전과제를 내놓았다. 많은 이들의 동경의 대상이며, 비장애인들조차도 자만이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길이기에 부모님은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세상 앞에 당당하게 발을 내딛는 아들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영화 ‘엄마 얼굴 예쁘네요’에서 강 씨가 맡은 역은 주인공 광호를 괴롭히는 ‘재명’이다. 재명은 친구가 되고 싶어서 광호의 주위를 맴돌며 귀찮게 하지만, 광호는 자신과 다른 모습의 재명이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어쩌면 강민휘 씨가 살아오면서 또래친구들에게 느꼈을 법한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촬영을 찍기 시작했던 스탭들은 오히려 그의 모습에서 진짜 ‘재명’을 찾게 됐고, 대본도 여러차례 수정하게 됐다. 사실적이고 뛰어난 그의 연기실력 덕에 당초 8장면에 출연하기로 했던 그는 무려 20장면을 찍게 됐다. 몇 번씩 반복되는 촬영과 추위를 견디며 해내야 하는 빡빡한 일정들이 그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나는 영화배우입니다. 어려운 연기도 척척하고, 춥고 힘들어도 참아야 합니다. 감독님이 칭찬 많이 해주셔서 기쁘고, 늦게까지 해도 재밌어요.”

늠름하게 자신이 영화배우임을 강조하는 그는 연기자, 스탭들과도 금세 친해져 선물사례를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촬영장의 군기반장이 되기도 한다.

“담배는 건강에도 안 좋고, 냄새 맡으면 속도 안 좋아요.”

유난히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는 그에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박흥식 감독 뿐이다.


문소리의 사인을 부탁했던 엄마에게 자신도 영화배우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사인을 받을 수가 있냐며 당당히 거절했던 강민휘씨. 영화 촬영도 모두 끝나고 지난 17일 졸업식까지 마친 그는 요즘 일주일에 두 번 서울에 있는 소속사를 찾아 춤과 연기 연습에 한창이다. 같은 소속사 힙합 가수의 뮤직비디오와 ‘아들과 딸’을 연출했던 장수봉 감독의 새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여자 친구와 인연을 맺게 해 준 플룻으로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을 멋지게 연주하는 그의 진짜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다. 조금만 대화가 길어져도 며칠, 혹은 몇 달의 내용을 뒤섞어 말하고, 어눌한 말투를 지닌 그에게 가수 또한 만만치 않은 장벽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장애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몇 배 더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아왔던 그에게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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