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여린 생명을 보듬는 `사랑의 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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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여린 생명을 보듬는 `사랑의 모정`
  • 이현주
  • 승인 2005.02.03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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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동을 입양하기 위해 동방사회복지회 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병원에서 옮겨진 신생아들을 돌보는 일시보호소에는 긴장감마저 감돈다.
“선생님, 우리 정현이(여·가명) 왔어요.” 갓난아기를 간호사에게 보이는 엄마는 위탁모다. 정현이는 생후 8개월이지만 몸무게는 신생아와 같은 3.3킬로그램이다. 생후 7개월에 9백그램으로 태어나 병원과 보호소를 오가며 생명을 키웠다. 그리고 8개월 뒤 이제는 혼자 힘으로 숨쉬고 먹을 수 있는 온전한 생명이 된 것이다.

부모에게 내놓인 아이들의 엄마

버려진 아기를 돌보는 일.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누구도 선뜻 하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위탁모의 일을 20년째 해온 장한 어머니가 있다. 아현감리교회 전옥례권사(60)가 그 주인공. 처음 이웃의 소개로 부업처럼 시작한 일이었다. 그 일이 20년째 삶의 전부가 되어버릴 줄 전권사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그에겐 19개월 된 동민이와 2개월 된 세희, 이렇게 두 명의 위탁아동이 있다.
전옥례권사가 처음 위탁모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84년. 날짜도 생생히 기억하는 그 날은 어버이날인 5월 8일이었다. 처음으로 안아본 신생아는 일주일도 채 못있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뇌가 점점 커지는 장애가 발견된 것이다. 두 번째로 다시 데려온 아이가 창수였다.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어 분유를 먹고 이내 잠드는 아이.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를 바라보노라면 만감이 교차했다.
‘어미가 누구인가. 이 사랑스러운 생명을 왜?’.
머릿속에는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몰라보게 예뻐졌다. 뽀얗게 우유살이 오르고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방긋방긋 웃는 아이는 새로운 기쁨이었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은 후에 다시 맛보는 감사가 아닐 수 없었다. 8개월이 지나고 창수가 입양을 갔다.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앓기 시작하더니 떨어지는 날, 눈물을 쏟아냈다. 창수와의 이별은 전권사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창수와 이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 때 후유증이 1년도 넘게 갔어요. 아마도 첫 정이어서 더했던 것 같아요. 방긋이 웃는 얼굴이 눈에 선해서….”
또 이런 이별을 겪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위탁모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다음 아이를 데려오면서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거듭된 삶은 이제 아이가 잠시라도 없으면 귓가에 울음소리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린다.
위탁아동을 키울 때 가장 큰 기쁨은 그 아이들이 좋은 양부모를 만났을 때다. 사실 지금은 손주가 둘이나 있지만 전권사는 손주들 똥기저귀 한번 갈아본적 없다. 손주보다는 내 새끼들이 우선이었고 사랑도 훨씬 앞섰다. 그런 자식들이 양부모를 만나 좋은 환경으로 떠날 땐 감사함이 밀려든다. 언젠가 떠나보낼 아이지만 전권사에겐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아이들. 그러나 이웃들의 시선은 다르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 나들이를 나가면 다른 집 손주들에겐 과자도 사주고 하는 이웃들이 우리 아기에겐 냉담한 시선을 보낸답니다. 모두 똑같은 아이들인데 그들의 눈에 다르게 보이는 이유가 뭘까요.”
서운함을 토로하는 전옥례권사는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가장 싫어한다. 말을 못 알아듣는 아이들이지만 ‘버려졌다’는 표현이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기 때문이다. 위탁모 생활 22년째. 힘든 일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열이 나는 아이를 업고 한밤중에 병원에 뛰어가기도 했고, 세돌까지 잘 키웠지만 양부모를 결국 만나지 못해 시설로 보내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외국으로 입양 간 아이들이 입양부모 밑에서 정말 잘 자랐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동방사회복지회는 10년 넘게 봉사한 위탁모들에게 미국 양부모가정 방문 기회를 준다.
전권사 역시 지난 99년 미국 텍사스 지역을 방문, 입양가족을 만나고 돌아왔다. 자신의 손을 거친 4명의 아이들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도 건강하고 지혜롭게 성장한 것이다. 외국 입양부모들에 대한 사회적 선입견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한국아동을 입양한 부모들끼리 모임도 갖고 있고 아이들에게 모국에 대한 자부심도 심어주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돌아와서는 위탁아동을 위해 더 많은 기도를 하게 됐다.

몸은 60이지만 마음은 30세
“사실 기독교인들에게 위탁모 봉사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와 목사님께 불충하는 일이기도 하죠. 갓난아이를 맡아 키우다 보니 주일성수를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성도들의 격려가 큽니다. 속회예배 때 항상 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저에게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교회에 다닌 지 수십년인데 나이 60에 이제야 권사가 됐어요. 그만큼 교회봉사를 잘 하지 못했다는 얘기죠.”
하지만 이런 어려움도 전권사의 신앙에 밑거름이 됐다. 부족한 신앙생활을 보충하기 위해 늘 기도에 힘썼다. 특히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위탁아동을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힘쓴다.
‘하나님,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기사 저의 손을 통해 건강히 자라게 하시고 좋은 가정에 입양되게 하옵소서. 이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마음에 분이 없게 하시고 양육하는 제 마음에도 평안을 주시사 사랑의 손길로 항상 어루만질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위탁아동을 키우는 전옥례권사는 남들보다 젊은 삶을 산다고 자신한다. “몸은 60대지만 마음이야 30세 엄마의 마음이에요.”
남편 유성기권사 역시 아이들의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고 있어 전옥례권사의 일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는 지 둘째 아들은 목회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또 부모님의 봉사에 대해 불평하기보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부모의 삶이 자녀에게 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받는 사랑이 더 큰 행복한 봉사

끊임없이 새 생명에게 사랑을 쏟아내는 전옥례권사.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이 더 크다고 고백한다. 그의 손을 거쳐 간 70여명의 아이들이 밝고 맑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저 양육하는 일에만 매달린다. 탯줄을 막 떼어낸 핏덩이를 안고 안절부절 못했던 2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능숙하게 아이를 돌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아슬아슬 하기만 하다. 그런 핏덩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방긋방긋 웃을 때면 마치 꽃봉오리가 터지는 모습을 목격한 듯 설레인다.
“더 바랄 것이 있나요. 내 몸이 건강해야 더 많은 아이들을 돌볼 수 있으니 건강주십사 기도하고 우리 아이들이 좋은 부모 만나 행복하게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게 가장 큰 소망이죠.”
친 손주를 키우기도 어렵다고 손사래를 치는 요즘의 현실에서 전옥례권사의 삶은 이웃집 아이에게 젖을 물려 키우던 옛 어미의 마음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이 온다면 좋으련만 각박한 현실은 이 작은 소망마저 무참히 짓밟는다. 그래도 위탁엄마들을 통해 따뜻한 사랑은 쉼 없이 이어진다. 작은 생명이 호흡할 수 있는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품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어머니’들의 사랑이 세상을 아름답게 지켜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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