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점심식사, 친구들과 함께 먹으니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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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점심식사, 친구들과 함께 먹으니 행복해요”
  • 현승미
  • 승인 2005.01.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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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네이버스 ‘우리이웃 방학교실’을 찾아서

  결식아동 없는 세상 만들기


천사 같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즐겁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은 작은 몸짓 하나에도 즐거워하고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꽤 매서운 바람이 불던 지난 14일 16명의 어린천사들이 모여 있는 무학초등학교를 찾았다. 방학이라 텅 빈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가는 한 남자아이를 뒤따라 가보니 굿네이버스에서 실시하고 있는 ‘우리이웃 방학교실’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형부터 누나를 따라나선 7살 어린 친구까지 테이블 두개에 나눠 앉아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스케치북에 각자의 사과나무를 만들고 그 위에 사과모양의 포스트잇을 붙이면 준비 끝. 사과마다 옆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친구의 장단점을 써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집단프로그램이다.


외로운 방학 잊게 하는 칭찬의 사과나무

“너는 그림을 너무 잘 그리는 것 같아. 이다음에 커서 미술을 해 보는건 어때?”

“넌 친구들을 잘 챙기고 참 착한 친구인 것 같아. 우리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어린 친구들의 앞에 각자의 사과나무가 돌아왔을 때는 사과나무마다 친구들의 관심어린 칭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 모두 자신들의 가방에 소중히 그 사과나무를 넣고 다음 시간을 준비하는데,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알고 보니 요리를 하는 시간이었다. 요리주제는 ‘유부 초밥’. 삼각형 모양의 유부 안에 밥만 넣으면 완성되는 간단한 요리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만든 음식이 마냥 자랑스러운가보다.

“같이 먹자.”

2학년 초록이는 유부초밥을 3개밖에 만들지 못한 1학년 동생 애란이에게 자신의 것을 선뜻 나눠준다.

“내가 만든 유부초밥을 집에 계신 아빠에게 갖다 드리면 좋을텐데...”

테이블 한켠에서 조용히 유부초밥을 만들다 아쉬움을 내비치는 영관이는 집에 계실 아빠를 대신해 자원봉사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자신이 정성껏 만든 초밥을 건넨다.

한참 아이들의 표정을 사진기에 담고 있던 기자 앞에 작은 여자아이 손이 불쑥 튀어나온다.

“드세요.”

4학년 미진이는 수줍은 듯 초밥 한 개를 건네고,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직은 자신의 것에 욕심낼 나이인데도, 작은 것도 친구들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저보다 더 어른스럽게 생각될 때가 있어요.”


“아이들에게 오히려 많은 것 배워”

섬기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김동현군(한양대 기계공학)은 오히려 아이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고 고백한다.


굿네이버스의 김나희간사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또래집단에서 어울릴 수 있도록 사회성을 길러주는 교육도 함께 실시하고 있다”라며 뿌듯해했다.


사실 ‘우리 이웃 방학교실’은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 제 때 식사를 먹을 수 없는 결식아동들을 위해 마련됐다.


‘부실도시락 파문’ 아이들에게 큰 상처

지난해 8월 교육청으로부터 급식비를 지원받은 아동이 40만 8천명이고, 그 수는 해마다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나마 교육청과 각 지방 자치단체로부터 지급되는 급식비마저도 현실적이지 못해 기본적인 식단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 제주시와 군산시에서 불거져 나온 ‘부실 도시락’ 파문처럼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위축돼 살아온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큰 상처만 남기고 있다.

이미 2002년부터 결식아동들을 위한 방학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굿네이버스는 아이들에게 필요한건 먹는 욕구만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식아동이라고 해서 다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아니에요. 맞벌이 부모를 둔 경우도 어린 아이들이 제 때 스스로 식사를 챙겨먹기 힘들거든요.”


저학년반의 담임을 맡은 정아영 양(천안대 사회복지학)은 먼저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지각, 결석도 많이 했는데,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모르고 지냈던 새로운 친구도 만나게 되고 집단 프로그램을 통해 흥미를 갖고 나서부터는 다들 열심히 참여해요.”


다양한 교구와 교재를 이용한 영어교실부터 구슬공예, 마술, 풍선, 요리 등 매일매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자신들을 맞이하는 방학교실은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영화, 전시회 등의 문화체험과 한국야쿠르트 천안공장 견학 및 박물관, 방송국 등의 현장학습, 눈썰매장 등의 야외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할머니의 사랑담긴 2,500원의 점심식사

특별히 요리수업으로 자신이 직접 만든 유부초밥을 시식하는 것으로 그날의 점심은 해결. ‘우리 이웃 방학교실’은 대부분 2, 30명 내외의 아이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평소 점심은 학교와 가까운 일반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그냥 다 내 손주들 같아요.”

일반인들에게 4천원씩 받는 식사를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는 말에 선뜻 2천5백원에 내놓은 김순덕 할머니는 무학초등학교 앞에서 작은 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12시 점심시간 방학교실 친구들이 들어서면 공간이 꽉 차 다른 손님은 받을 수도 없는데도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매일 여러 가지 반찬을 내놓지만 사실 아이들은 김, 계란 후라이, 생선을 제일 좋아해.”

때문에 할머니의 손주 사랑 듬뿍 담긴 점심에 이 세 가지 반찬은 무제한 제공된다.

밥도 너무 맛있고, 저렴한 가격에 좋은 식단을 제공해 주셔서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는 말에 소녀 같은 웃음을 지으시며, ‘모두 내 손자고, 내 손녀 같다’는 말만 거듭 되풀이 하신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 누군가를 돕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시골 외할머니 같은 포근한 웃음을 내어 보이시는 할머니의 점심에는 그저 ‘사랑’ 양념이 한 가득이다.


“다음주 월요일은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자장면을 먹을 거예요. 지각 하는 친구들이 없도록 모두들 일찍 오세요.”

정리정돈까지 마친 후 종례시간. 아이들은 자장면이란 말에 환호성을 지른다.


한정된 금액으로 아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여념이 없는 선생님들은 벌써부터 3번의 만남 뒤에 있을 헤어짐이 걱정이다.


그래도 다행히 굿네이버스의 경우 한번 인연을 맺은 결식아동들과 꾸준히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아이들의 사례발굴을 통해 후원자들과 결연을 맺어주는 사업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친구들을 향한 이런 작은 움직임이 앞으로 사회전반에 걸쳐 확산돼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즐겁게 교실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배고픈 아이, 외로운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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