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누는 것은 연탄이 아닌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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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누는 것은 연탄이 아닌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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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1.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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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연탄` 배달하는 원주 밥상공동체 사람들 이야기
한 해 동안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분주하게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 떠나는 길은 퍽 인상적이다. 지난 11일 모처럼 중부고속도를 달려서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영동고속도로는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떠나는 차들로 답답하기만 했다. 스키, 스노우보드를 실은 차들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했던 광고처럼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교통 체증 때문에 약속 시간을 넘겨 원주밥상공동체(대표:허기복목사)에 도착했다. 작은 사무실과 넓고 쾌적한 무료급식소, 그리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은 보잘것없는 손님을 말없이 반겨주었다. 빗줄기를 받아들이는 대지처럼.

술과 함께한 인생들

원주밥상공동체를 찾는 사람들은 ‘희망’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하루하루 보내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고 버겁기 때문이다. 시계는 오전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무료급식소에는 벌써부터 점심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이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말들로 가득한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들은 당당하다. 공짜로 먹는 식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료급식소 입구에는 ‘식사 자존심 값 모음통’이라는 것이 있다. 식사를 원하는 사람은 이곳에 식사 값을 내야 한다. 식사 값으로는 박스도 좋고, 병도 좋고, 깡통도 좋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힘이 없을 뿐이지요.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인식시켜주고 싶어서 이런 엉뚱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허기복목사의 말이다. 11시 30분. 남루한 옷차림으로 연탄은행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 어제 저녁에 먹었던 술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정상적인 발걸음이 아니다. 입을 열자 지독한 술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연탄 두 장을 들고 자신의 집을 향해 촘촘히 사라졌다.

연탄은행을 찾는 사람들은 이렇게 당당하다.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술 취한 사람, 내일을 상실한 사람 등등. 연탄은행은 24시간 개방됐다. 누구나 필요하면 가져가면 된다. 남의 것을 왜 가져가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없다. 한 후원자에 의해 시작된 연탄은행은 추운 겨울 어려운 사람들에게 온기가 되도록 연탄을 넣어 주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희망의 온기가 피어나는 연탄 꼭 필요한 분은 매일 5장씩 가져가세요.” 그렇지만 연탄은행은 빈 적이 없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후원자들로 인해 늘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탄은행은 2002년 연탄 한 장을 살수 없어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지 못하는 영세민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없을까 해서 시작됐습니다. 돈도 없어 이불만 겹겹이 두른 채 오늘도 냉방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생각하다 못해 무료로 연탄을 나누는 연탄은행을 시작한 것이 이제 원주와 춘천, 충남 금산, 서울에 이어 공주에까지 문을 열게 됐습니다.

연탄은행은 2평짜리 창고에 연탄을 쌓아 놓고 필요한 사람들이 하루 5장 이내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연로한 분이나 장애가 있는 가정에는 배달도 해 드립니다.” 허목사의 바램은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연탄불처럼 삶의 용기를 다시 지펴 열심히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연탄은행은 선한 사람과 어려운 사람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사랑의 끈’으로 족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고물상에서 생긴 사건

원주밥상공동체는 무료급식, 연탄은행, 보물상, 농사모, 책마을 등 노숙자와 독거노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있었다. 특히 밥상공동체 자활 사업장 가운데 하나인 보물(고물)상에 근무하는 이 모씨(47세)는 과거 가정 해체와 노숙이란 아픔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방도 새로 장만하고 아이들을 중학교에 보내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여 매월 오 만원씩 밥상공동체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어 주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취재 도중 이곳에 작은 전쟁이 벌어졌다. 어렵게 시간을 마련하여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허목사를 급하게 찾는 전화벨이 울렸다. 보물상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허목사와 함께 봉고차를 몰고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갔다. “이런 일은 자주 겪습니다.” 허목사는 그동안 숱한 경험을 했는지 별로 긴장한 모습이 아니다. “이 사람이 멱살을 잡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보물상을 책임지고 있는 이모씨가 설명을 했다. 실랑이 건 사람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동안 시비를 걸었던 모씨도 허목사를 보자 꼬리를 내렸다. “무조건 죄송합니다. 이놈의 술 때문에 그랬습니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곳에서 허목사의 권위는 대단했다.




탄이네 사람들


봉사는 남을 위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다. “정말 봉사를 하는 동안 우리가 그분들께 도움을 드리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 스스로 더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습니다.” 황금같은 주말을 ‘32개 구멍’을 통해 사랑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명 ‘탄이네 사람들’. 탄이네 사람들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다. 원주밥상의 연탄은행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모이면서 시작된 ‘탄이네 사람들’은 오픈하지 일년도 안돼 1천2백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매달 둘째 주가 되면 서울, 부산, 대구에서 찾아온 ‘탄이네 사람들’은 아무 조건 없이 연탄을 배달한다.

“이 추운 겨울에 연탄을 나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뭉클해져요. 연탄을 받을 분들이 울먹이며 고맙다는 말을 할 때 보람과 안타까움이 교차합니다”(이지영씨(34, 여)). 이날도 8명의 탄이네 사람들은 6장, 8장 연탄을 지게에 지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여 도착하자마자 두꺼운 고무장갑을 낀 손을 자랑삼아 내보이고 있는 탄이네 사람들은 이렇게 나눔의 기쁨을 즐기고 있었다. 탄이네는 인터넷 검색사이트 엠파스(empas)에서 연탄메일이라고 메일을 쓸 때 체크를 하면, 1원씩 자동으로 엠파스에 적립하게 되고 이 돈이 쌓이면 연탄은행에 연탄으로 기부하고 연탄을 배달하는 자원봉사모임이다.

연탄을 공급받는 대부분 독거 노인들은 연탄 난로가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난로처럼 방안에 들여놓고 난방을 하고 있다. 백복희 할머니(76세, 여)는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구멍이 나서 비만 오면 방에 물이 찬다며 걱정을 하다가도 연탄을 들여놓는 걸 보면서 연탄 3장이면 하루가 거뜬하다고 좋아한다. 다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해 더욱 처량해 보인 백 할머니. 탄이네 사람들에게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어 분주하다. 극구 사양하는 이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면서 즐거워하는 백 할머니를 통해 ‘작은 천사의 모습’을 발견한다.

허기복과 봉사자들

“사랑은 달리기와 같습니다. 달리기를 하려면 운동장이나 코스가 있듯이 우리주위에는 언제나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어려운 사람과 계층이 운동장처럼 즐비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목표가 있게 마련입니다. 가난한 것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목표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6년 동안 밥상공동체를 통해 30만 명의 사람들을 만나 밥을 나눴습니다.”

허목사는 이런 맘으로 사랑을 나눠주고 있었다. 자신도 어려운 일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허목사는 요즘 기독교인이 너무 계산적으로 변해버린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한다. 사랑은 조건없이 퍼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허목사는 연탄이 아닌 희망을 나르고 있었다. 
                                                                                    <송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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