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비로 ‘에듀 푸어(Edu poor)’ 시달리는 중년들
중년(45~64세)의 43% “이중과업으로 노후준비 어려워”
“벌이가 적진 않지만, 고정 지출이 늘어나 부족한 부분은 ‘마통’(마이너스통장)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치솟는 물가에 생활비 지출은 늘어나고 자녀들의 교육비와 부모님 의료비가 한꺼번에 나가면서 매달 나가는 지출이 커지니 제 수입만으론 감당하기 버겁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 때까지 마이너스 인생으로 끝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대 후반 취업해 아이 둘을 낳아 키우고 있는 40대 중반의 직장인 A씨의 말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시대 속에 경기 불안정성이 심화되면서 대한민국의 허리라 할 수 있는 ‘4050 중년층이’ 흔들리고 있다.
힘겹게 취직에 성공해 20년 이상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수입보다 큰 지출 탓에 늘 빚에 허덕인다. 위로부터는 연로한 부모를 봉양해야 하고 아래로부터는 자녀교육비에 허덕인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이 시대, 대한민국 중년들의 모습이다. ‘아파서도 안 되고 아플 수도 없는’ 4050 중년 세대의 현실을 짚어본다.
‘이중 과업’에 부담 커진 4050세대
인생의 정점에 이르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다. 청년을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기 이전, 가장 완숙한 시기인 40대부터 60대 초반을 ‘중년’이라고 칭한다. 삶이 안정적 궤도에 올라 사회적‧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룬 상태로 인생의 황금기라 불리며 다양한 경험과 사회적 관계를 쌓아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은 연령대로 인구 전체의 20%인 850만 명에 달한다. 고령화사회의 흐름 속에 대한민국의 허리 축을 담당하며 ‘청년’이라 칭할 만큼 왕성한 사회활동에 나서고 있는 4050 중년 세대의 삶은 그만큼 풍요로울까.
중년에 대한 이상적 기대와는 달리, 빛 좋은 개살구라고 불릴 만큼 이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겉으로는 생활 수준이 나아지고 소득수준도 높아진 것 같지만, 자녀교육비 지출을 비롯해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며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
직장에서는 치고 올라오는 직원들의 기세에 눌리고 상사의 압박에 마음이 무겁다. 그렇다 보니 중년은 직장에서 일에 치이면서도,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돌보아야 하는 이중 부담을 떠안은 ‘샌드위치 세대’라고 불린다.
특히 40대부터 주택 매입 비중이 늘어나면서 금융 부채가 급격히 상승한다. 지난 18일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소득 대비 부채비율(LTI)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40대로 전체 대출이 연간 소득의 2.5배를 돌파했다.
부채의 원인은 ‘영끌’ 주택 매수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주가 40대인 가구의 평균 부채는 1억 2,531만원으로 그중 주택담보대출이 57.9%(7,267만원)에 달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와 집값 상승으로 내수의 주축이 되어야 할 40대가 빚의 늪에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
자녀 교육비에 대한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자녀를 둔 4050대 가구의 지출항목 1위는 ‘교육비’로 전체 지출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과도한 교육비 지출이 4050세대의 노후 대비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신한은행이 최근 발표한 <2024 보통사람 금융보고서>에 따르면,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40대 평균 가구 소득은 월 744만원이며 이 중 116만원(15.6%)을 교육비로 사용했다. 소득 하위 20%도 월평균 교육비가 56만원에 달했다.
한창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경우 심할 경우 빚까지 내면서 자녀 교육비에 투자하는 ‘에듀 푸어(Edu poor)’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타 국가의 경우 세대별 평균 소비성향이 소득이 많은 4050세대에서 저축증가로 낮아졌다가 노년기에 다시 높아진다. 하지만 한국의 40대는 과도한 자녀 교육비 지출로 이 시기 평균 소비성향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중년층의 과도한 지출이 노후 준비 부족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지난 7월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중년의 이중과업 부담과 사회불안 인식 보고서>의 조사 결과 중년층(45~64세) 26.7%가 가족 돌봄으로 어려움을 경험한 적이 있으며, 43%는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중 과업의 부담은 남성과 40대 중후반, 소득 하위계층에서 두드러졌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중년을 뒷받침할 사회보장제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연구팀은 “중년기의 이중과업의 부담이 노년으로 이어질 경우 전체 사회구조의 불안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계층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정부가 사회보장정책을 확충하고 사회보장 제도 전반에 중년기를 고려한 종합 정책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난 가속화’로 위기에 내몰려
40대는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라 불리지만, 고용난 심화로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해 전체 연령의 취업자가 32만 7,000명 늘었지만 40대 취업자는 5만 4,000명이 감소했다.
최근 10년간 전체 취업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40대 만 고용률 내리막길(9.3% 감소)을 걷고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금, 우리나라 퇴직 시기도 빠르게 앞당겨지고 있는 모양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55~64세가 일자리에서 퇴직한 나이가 평균 ‘49.3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중년이 늘어가고 있는 것. 일례로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4050세대의 ‘비자발적 퇴직자’는 48만8,544명으로 5년 만에 제일 높은 수치를 보였다. ‘비자발적 퇴직’이란 직장의 휴‧폐업, 명예‧조기 퇴직, 정리해고 등으로 실직 상태에 이른 사람을 말한다. 특히 50대 후반부터 비자발적 퇴직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 상당수가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50대 이상의 재취업률은 40% 이하로 나타나고 있으며, 재취업까지 기간은 평균 10개월 이상 걸렸다. 4050 중장년층이 실직 후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소득이 이전보다 낮아지는 경우도 많았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청년과 고령에게 집중되어온 만큼 40대 특히 중년 남성을 위한 맞춤형 고용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40대의 고용불안이 가계소득 감소와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년의 사회적 고립과 가난은 노년기 빈곤 문제로 이어져 은퇴 후 ‘노후 절벽’에 빠지기 쉽다. 경제적 소득에 대한 부담은 은퇴 후 근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건강 악화 등으로 불안한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
무엇보다 ‘은퇴가 불행의 시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시기부터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경제력을 상실한 가장들은 가정을 부양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과의 정신적 연대 단절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4050대 중년층의 이혼률, 자살률 또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나 정신적 돌봄 활동이 가장 필요한 세대임을 알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의 저자 김찬호 교수(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는 “경제적 책임감이 높은 중년의 시기, 사회에서 실직이나 퇴직, 사업의 실패를 경험하면 큰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며 “좌절감과 패배의식에 시달리고 사춘기 자녀와도 정서적 거리감을 느끼면서 사회적 고립이 가정 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한 “중년의 사회적 고립은 가정의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선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고, 이른 퇴직으로 상실감에 빠져있기보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삶의 전환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현재 중년의 시기를 잘 보내야 외롭지 않은 노년의 시기를 맞이할 수 있으며 행복한 미래를 열 수 있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