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가 이어진 후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약속이 요엘서를 마무리짓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3:16) 해와 달이 캄캄해지고 별들이 빛을 거두는 우주적 심판의 현장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지 재앙의 면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18절) 요엘의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나아가는 지향점을 일깨워줍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부르는 호칭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토질의 비옥함이나 농업 축산업의 활발함을 가리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시대의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안식’ 즉 죄와 허물을 담당하신 그리스도를 모신 인생이 누릴 축복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은 풍성한 삶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이 사랑에 근거해 있기에, 이스라엘의 구원은 위기에서의 구출을 넘어 하나님에 관한 더 깊은 지식, 그분과의 더 친밀한 사귐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갑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 세력과 이집트 세력 가운데 휩쓸리며 이집트의 종살이 400년과 바벨론 유수 70년을 견뎌냈고, 고대 근동의 패권이 앗수르에서 바벨론, 페르시아와 헬라, 로마로 손갈이를 하는 동안 늘 억압과 지배를 당했습니다. 한 나라의 힘은 곧 그들이 섬기는 수호신의 위력이라고 믿던 고대사회에서, 약소국 이스라엘이 전능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짓밟은 이방 나라들은 너희가 믿는다는 여호와 하나님은 왜 너희를 지켜주지 않느냐며 비아냥거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시면서도 그들을 향한 사랑을 거두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섭리 가운데 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열방을 향해 그분의 권능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라”(21절) 천지를 발등상으로 삼으시는 전능자 하나님이지만,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시온(예루살렘)을 당신의 거처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란 도시가 대단해서일 리 없습니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편애를 숨기지 않으신다는 점에서 구약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보편적 인류애를 내세우는 경전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하는 기독교 역시 사람들의 눈에 배타적 종교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낙제할 가능성이 없는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의미가 없듯, 선택도 희생도 결단도 필요 없는 보편적 구원은 진정한 구원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값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라는 가장 값비싼 희생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존귀한 대우를 받은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온의 하나님’을 자처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백석대·구약신학
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118) -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라” (욜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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