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이 달라진다. 100년이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다. 기술의 발전과 인식의 변화, 문화의 확장은 정치·경제 전반은 물론 우리의 일상까지도 뒤바꿔놨다. 교회와 선교도 예외는 아니다. 약 2천년 전 로마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전해졌던 복음은 마차와 범선, 기차와 비행기에 몸을 싣더니 이제는 전 세계에 연결된 인터넷망을 타고 단 몇초만에 전달된다.
달라진 세상에서 교회의 모습과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2천년 전과 같을 수는 없다. 국제 로잔운동은 오는 9월 한국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를 앞두고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현실과 그에 맞는 선교 전략을 고민한 ‘대위임령 현황 보고서(The State of the Great Commission Report)’를 발표했다. 전 세계 최고의 선교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작성한 보고서는 10가지 질문을 통해 교회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그에 맞춘 대안을 제시한다. 본지는 이번 호부터 10회에 걸쳐 로잔운동이 고민한 10가지 질문의 포장을 풀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지금 집에 현철이 있나요?” 누구든 자신만의 전화기를 갖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시절, 친구와 골목에서 공이라도 차볼라치면 고사리손으로 다이얼을 꾹꾹 누르고 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곤 했다. 가볍게 손가락만 툭툭 움직이면 순식간에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금은 보기 힘든 추억의 한 장면이다.
‘카카오톡’으로 나누는 대화의 양이 입을 열어 주고받는 대화의 양보다 더 많아진 시대다. 심지어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메신저 등 SNS에서 텍스트로 나누는 대화가 워낙 익숙하다 보니 전화를 걸거나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청소년들이 있을 정도다. 이젠 ‘디지털 시대의 사역이란 무엇인가’(What is Ministry in a Digital Age?) 질문하는 교회만이 다음세대와 눈높이를 맞춰 소통할 수 있다.
예배당에 빈자리가 늘었다
사역 환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소위 ‘십자가만 꽂아도 사람들이 모여든다’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는 얘기다. 대신 사람들은 디지털 커뮤니티에 모여 그간 얼굴을 맞대야만 했던 활동들을 대체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온라인 예배를 경험한 적잖은 성도들은 마스크를 벗어 던진 이후에도 예배당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비단 한국교회만의 현상은 아니다.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수에 비해 매주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고작해야 절반 수준인 것으로 조사된다. 미국은 종교인 중 약 37%만이 매주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고 답했다.
매일 기도를 한다고 답한 종교인들은 그보다는 좀 더 많다. 특히 미국은 예배 참석률(37%)과 기도 참여율(53%) 사이에 적잖은 차이를 보이는 국가 중 하나다. 종교적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은 매일 기도를 드리는 종교인의 비율이 90%에 육박한다.
더 큰 문제는 다음세대다. 전 세계적으로 18~39세 사이의 청년이 40세 이상 인구보다 예배에 참석하는 비율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 폴란드의 경우 18~39세와 40세 이상의 예배 참석율 차이가 29%p나 됐다. 기독교가 다수 종교인 콜롬비아(19%), 푸에르토리코(16%), 포르투갈(16%), 그리스(15%) 등도 유의미한 차이를 나타냈다. 매일 기도를 한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40세 이상이 18~39세보다 높았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영적 관심사는 어디에 있을까. 바나그룹의 조사 결과 크리스천 청소년들은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38%)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29%),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도록 돕는 일’(27%), ‘사람들이 건강한 관계를 맺도록 돕는 일’(26%)이 그 뒤를 이었다. 직접적인 복음 전파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다섯 번째인 22%에 그쳤다.
빅데이터에서 선교의 길을 찾아라
디지털 시대는 곧 정보의 홍수 시대다. 데이터를 지배하는 자가 곧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자가 된다.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선교 사역에 있어서도 빅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Operation World’나 ‘World Christian Encyclopedia’와 같이 전 세계 선교지 기도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생겨났다.
최근 10년간 급속하게 진행된 일명 ‘데이터 혁명’의 물결에서 교회 역시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 모든 것이 계산 가능한 세상을 살아가며 데이터에 입각한 사역 전략을 세우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데이터는 그저 수집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핵심은 방대하게 펼쳐진 데이터 중 사역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해내는 능력이다. 디지털 시대의 선교를 위해서는 데이터 수집과 해석 능력을 갖춘 인력과 장비의 확보가 요구된다.
선교 사역에 필요한 데이터는 ‘글로벌 데이터’와 ‘로컬 데이터’로 구분된다. 글로벌 데이터에서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변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면 로컬 데이터는 각 지역의 특징에 맞춘 선교 전략을 수립하는데 용이하다. 이 둘은 종종 상충되는 것으로 오해되곤 하지만 숲과 나무를 모두 보는 관점을 갖추기 위해서는 글로벌 데이터와 로컬 데이터의 균형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것은 데이터가 갖는 잠재력과 중요성에 비해 세계 교회의 데이터에 대한 투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로잔운동은 ‘데이터’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신경계’라고 비유하면서, 데이터에 접근해 공유하고 관리하며 교육하는 일련의 과정이 교회를 섬기는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온라인 교회도 교회일까
코로나19 팬데믹은 ‘교회’에 대해 흔히 생각하고 있던 통념을 뒤흔들었다. 눈에 보이는 예배당에 모이는 것만이 교회가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믿는 자들이 함께하는 공동체 역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로잔운동은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디지털 교회’라는 개념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웹사이트, 이메일, 소셜 미디어 채널,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해 소통하는 교회다. 둘째론 방송이나 온라인 중계와 같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예배를 드리며 구성원들 사이의 교류가 거의 없는 형태, 셋째는 영상 예배를 드리긴 하지만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을 보다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형태다. 그런가 하면 교인들이 현장 예배에 참석하거나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교회’도 있다. 가장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형태는 증강현실 속에서 아바타를 통해 상호작용하며 예배와 나눔에 참여하는 ‘VR 교회’다.
사실 코로나19 이후 현장 예배와 온라인 예배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교회’ 형태는 한국에서도 상당수 교회가 채택하고 있다. 어떤 이는 수천년을 이어온 ‘교회’라는 전통에 ‘기술’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침투해 교회의 본질이 흐려지진 않을지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그럴수록 우리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기술이 갖는 장점과 우려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교회가 갖는 두드러지는 장점은 거리와 문화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디지털 커뮤니티 안에서라면 한 지붕 아래 ‘교회’로 함께할 수 있다. 디지털 커뮤니티가 갖는 ‘탈중앙화’ 특징으로 인해 이전의 교회 공동체에서 권위 있는 몇몇 목소리만이 강조됐던 행태가 완화된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동시에 디지털 교회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커뮤니티에서는 정보의 흐름이 개방적이고 동시다발적이다 보니 무엇이 정확한 정보인지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성도의 교제’가 깊이 있게 이뤄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디지털 미디어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로잔운동은 케이프타운 서약을 통해 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이 세계 선교의 새로운 기회이며 잠재력임을 선언한다. 디지털 시대는 이론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이전에는 지리적, 문화적 한계로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구태여 복음을 전하는데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의 종류를 반복해 나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고려해야 할 것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복음이 많이 도달되는 것이 곧 회심과 변화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가 10만건이라고 해서 그 영상의 내용에 설득된 사람의 수가 10만명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온라인 콘텐츠는 전통적 미디어에서 전해진 콘텐츠에 비해 훨씬 빠르게 휘발된다. 쉽게 말해 유통기한이 짧다는 뜻이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건의 영상이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았다가 유행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디지털 미디어가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하게 하는데는 효과적이지만,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진정한 회심과 변화로 이끌기 위해서는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기차와 비행기가 등장했다고 해서 그 옛날 로마가 만들었던 도로가 쓸모없어지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이 전통적 선교 전략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로잔은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선교는 전통적 선교방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전략으로 융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