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 26자를 숫자로 변환하면 A는 1, B는 2, … Z는 26이 된다. 그럼 다음 단어를 숫자로 환산해서 합쳐보자. Work hard=98점, Knowledge=96점, Luck=47점, Money=72점, Leadership=89점이 된다. 그럼, Attitude(태도)의 점수는 얼마일까? 한번 계산해보시길.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의 속마음도 그렇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눈, 표정, 말투, 사용하는 어휘 등으로 나타나게 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눈치’라는 걸 많이 살핀다. 자신, 남, 일, 상황, 미래에 대한 속마음을 우리는 ‘태도’라고 한다.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느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다른 사람을 존중하느냐 무시하느냐, 어떤 일에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느냐 불만족하느냐, 미래에 대해 낙관하느냐 비관하느냐가 그 사람의 태도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그 사람의 성격, 가치관, 인식(생각, 관점), 감정이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한다. 성격과 가치관은 오랜 세월 형성되어 일관되게 행동(태도)을 결정한다. 반면에 사물을 보는 인식이나, 느낌을 받아들여 생기는 감정은 자주 바뀐다. “컵에 물이 절반 들어있네”라는 건 사실(fact)이지만 “반이나 남았네”, “반밖에 안 남았네”라는 건 인식(perception)이다. 인식은 때와 상황에 따라 바뀐다. 사실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인식은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이기 쉽다. 인식을 사실로 확신할 때 오류가 생긴다.
사람의 의식 내부에는 인식의 오류를 만드는 렌즈들이 있다. 스테레오 타입, 수직적 사고, 편견, 흑백 논리적 사고, 부정적 사고, 권위주의, 습관, 경직된 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무의식의 성격 같은 것들이다. 우리의 인식에는 이러한 렌즈들이 왜곡한 ‘고장 난 관념’이 많다. 고장 난 관념을 확신하면 세계관에 문제가 생기고, 다른 사람의 인식과 충돌을 하게 된다.
고정관념을 깨야 진리를 깨닫고,
진짜 감사거리를 찾을 수 있다
고정관념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굳어버린 생각이다. 경직된 사고는 발뒤꿈치처럼 굳어있어 유연성과 민감성을 잃게 한다. 공식(公式)이나 법을 맹신하니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프리카에 신발을 수출하고,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수출하고, 발에 화장품을 바를 상상을 하지 못한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랬다. 성경을 문자로만 해석했다.
둘째는 고정된 시각이다. 사물이나 현상을 한쪽에서만 보면 제대로 못 본다. 편견, 부정적 사고, 흑백논리, 수직적 사고 같은 것에 빠지면 사물이나 현상을 제대로 못 본다. 동전을 뉘어놓고 보면 동전은 언제나 둥글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타원이나 직선으로도 보인다. 진리는 관점을 바꿔야 제대로 보인다.
셋째는 습관이다. 우리의 생각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굳어진 습관과 관습, 전통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늘 그래왔다”는 생각은 새로운 접근, 새로운 변화를 막는다. 새 구두를 신으면 발이 불편하지만, 늘 신던 구두를 신으면 편하듯이. 불편하지만 새 구두를 신어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넷째는 상대적 가치와 절대적 가치의 혼돈, 주객의 전도다. 도대체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수단(비본질)인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한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 사랑을!”이라는 마르코 안토니오 도미니스의 외침을 반대로 받아들인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본질보다 비본질을 강조하고, 고정관념을 본질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행 9:18) 바울은 비늘 같은 것들을 눈에서 떼어내고서야 진리를 발견했다. 사울의 영안을 가렸던 ‘눈의 비늘 같은 것’이 바로 고정관념이 아닐까?
고장 난 관념으로 쌓아 올린 신앙의 탑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고정관념을 깨는 건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정상 궤도로 복귀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경직된 사고, 고정적인 시각, 습관, 비본질로 뒤엉킨 고정관념 상태에서 과감히 이탈해 유연한 사고, 다양한 관점, 새로운 접근, 본질로 회귀해야 한다. 그래야 진리가 보이고, 우리 삶에 가득한 진짜 은혜도 보이고 진짜 감사거리도 보인다.
(사)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