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 혹은 대인관계에서 어떠한 문제를 만나게 될 때, 과도하게 책임감을 갖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자신이 다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짐(burden)을 서로 지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였으며(갈6:2) 또한 각자 자기 짐(load)을 질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갈6:5).
앞에서 말한 짐은 상대방의 과도한 무거움을 떠받치도록 어깨로 돕는다는 헬라어 ‘baros’를 의미한다. 자기 짐을 진다는 것에서의 짐은 모두에게 주어진 일상적인 노고, 개개인에게 주어진 책임을 말한다. 이런 말씀과 관련해 본다면, 각자 자신의 경계선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상대방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분과 상대방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한다.
짐을 각자의 문제로 본다면, 우리는 그 짐의 소유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은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고, 자기 나귀에 태워주고, 거할 곳을 구해 주었다. 상대방의 무거움을 덜어준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 후에도 계속 그 사람과 함께 하고자 했다. 자기 일을 내팽개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여관 주인에게 맡기고 가던 길을 갔다. 그는 과도한 책임을 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계선을 지키고 자신의 짐을 지는 상황인 것이다. 누가 짐의 소유권이 있는지를 알고 적절한 자신이 타인을 위해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가족관계나 대인관계에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누군가의 짐을 과도하게 짊어지게 되는 구출자가 되기도 한다. ‘메시아신드롬’에 빠지게 되어 돌보고 가르치면서 부성과 모성의 역할만 과도하게 하려는 경향을 보일 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을 도와준다는 명목 아래에 자신이 필요한 존재가 되려는 욕망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며, 상대방의 의존도를 높이게 되고 문제가 진정으로 해결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주말에 아직 숙제를 끝내지 못한 것을 알게 되어, 울면서 엄마에게 숙제 못해서 큰일 났으니 엄마가 도와달라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럴 때, 우리는 숙제를 하지 못한 문제는 누가 가지고 있는가? 그 문제의 소유는 자녀가 갖고 있다. 그런데 자녀가 자신의 문제를 소유하지 않으려고 할 때는 불안하고, 걱정되면서 엄마에게 의존하게 된다. 문제의 소유권을 받게 된 엄마는 부담을 느끼게 되면서 짜증이 나고 자신이 자녀가 숙제를 해결하려고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녀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힘을 잃게 되고, 자신감을 잃게 되고 무력감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문제를 자녀가 가지게 된다면, 자녀는 자신의 숙제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되고, 성장하게 되는 기회가 되면서 자기 존중을 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된다. 또한 그것을 지켜보면서 엄마는 자신의 문제로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기다리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렇다면 경계를 지켜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면서 각자의 짐을 지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문제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질문하도록 하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누가 행동해야 하는가? 누가 그 문제로 인해 가장 많이 영향을 받게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