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찬 무신론자들에게 권할 ‘한 권의 책’은 바로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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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에 찬 무신론자들에게 권할 ‘한 권의 책’은 바로 성경
  • 박찬호 교수 백석대
  • 승인 2023.06.0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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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12) 무신론이라는 신앙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코미디언 출신으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된 젤렌스크(1978~)는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가 2~3일도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던 러시아와의 전쟁을 용감하게 수행하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도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파스테르나크는 러시아인이요 공산주의자였고 무신론자였다. 그는 1917년의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을 열렬하게 환영하였던 사람이다. 공산주의자였기에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러시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 유토피아가 건설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후에 파스테르나크는 러시아에 들어선 공산정권에 깊이 실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무신론 신앙을 잃어버린 무신론자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믿는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믿고 안 믿고의 차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부재를 믿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신론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신앙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무신론도 일종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전방에서 보병 소대장으로 군 복무를 했다. 군 전역 후 신학교를 갈 생각이었고 자주는 아니지만 병사들과도 이런 저런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한번은 자신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겠다는 어떤 병장과 논쟁 아닌 논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을 다니다 입대를 한 나름 인텔리였던 그는 매우 고집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을 했고 나는 볼 수 있는 것만을 믿겠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드러내 보여주려 했는데 대화는 평행선을 그었던 것 같다.

10여 년 전 2013년 대학가에서 무신론 동아리인 프리싱커스(Freethinkers)가 전도퇴치 카드를 만들었다는 보도가 난 적이 있다. 명함 크기의 이 전도퇴치 카드는 대학 캠퍼스에서 노방전도를 하는 기독교 선교단체를 겨냥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 카드의 한 면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저희는 종교가 없습니다. 세뇌로 얼룩진 울타리를 깨고 나와 세상을 둘러보면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다는 것을 더 감동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한 이 무신론자 동아리 프리싱커스는 짐짓 자신들은 편견이 없는 사람들로 자처하고 있지만 이들의 종교에 대한 이해는 매우 왜곡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한 권의 책’(성경을 이르는 말이다)을 읽고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은 이런저런 책들을 더 많이 읽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호기(豪氣)를 부리고 있다.

자신들은 자유로운 사상가들이고 자신들이야말로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는 이들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세뇌라고 조롱하고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책 밖에 읽어보지 못한 뭔가 덜떨어진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그들이 자신들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제시하고 있는 책들을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읽어보고 난 후 그들을 향해 ‘한 권의 책’을 읽어볼 것을 권유하면 어떨까 싶다. 그들이 제시하고 있는 책 중의 하나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이다. 이 책은 천문학을 대중화한 책으로 알려져 있으니 교양을 위해서라도 읽으면 좋겠다. 물론 <코스모스>의 맨 앞 문장은 저자의 무신론적 신앙을 천명하고 있는 유명한 말이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을 모든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상범 또는 확신범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전향을 거부하는 사람들인데 1993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북송된 이인모 노인 같은 사람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미전향 장기수로 무려 34년을 복역하였다고 하니 그 사상적인 확신은 거의 신앙을 능가하는 듯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그들보다 더 나은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인데 과연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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