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같은 인생에도 누려온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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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같은 인생에도 누려온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3.06.07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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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과 삶 : 작곡가 겸 예배인도자 손경민 목사

CCM '은혜' '행복' '감사' 등 자전적 내용의 곡들 큰 사랑 얻어
가난하고 깨어진 가정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기도
진실된 ‘믿음’ 묻어난 찬양…복음적 메시지로 온 세대 잇고파

 

손경민 목사는 찬양을 만들 때마다 하나님께서 ‘검증의 시간’을 주신다며, 두렵고 떨리지만 부족한 양을 써주심에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지난 3년여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은 와르르 무너졌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루아침에 교회를 가는 것조차 어려워지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예배가 실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작곡가 겸 예배인도자 손경민(43·은광침례교회 협동) 목사가 202012월 발매한 CCM <은혜>가 엄청난 사랑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곡은 지금도 국내 주요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상위권에 속하며 유튜브에선 관련 영상들의 누적 조회수가 3,000만회를 육박한다.

감동적인 선율과 함께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까지. 모든 것이 한없는 은혜라는 가사는 특히 코로나 시기를 힘겹게 버티는 크리스천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선물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찬양은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전에 먼저 손 목사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겸임교수이자 <행복> <충만> 등 주옥 같은 곡들을 쏟아낸 그를 만나 신실한 믿음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어머니의 신실한 기도
평탄치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제가 남들 눈에는 불행해 보이는 게 정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저는 늘 행복했어요. 세상 사람들은 광야와 같은 인생에서 무슨 행복이냐고 반문하겠지만요.”

이 같이 운을 뗀 손 목사는 지금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며 걸어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담담히 풀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유년 시절을 한 마디로 집약하자면 깨어진 가정이다. 손 목사가 어릴 적 부친이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가면서 고난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

빚까지 떠안은 상황에서 모친은 두 자녀를 책임지기 위해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빚쟁이에 쫓겨 1년에 네 번씩 이사를 다녔다고 회상한 그는 어머니는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닥치는 대로 궂을 일을 도맡았다. 가사도우미부터 식당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고 말했다.

손 목사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의 고된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신문배달을 시작으로 6학년 때는 구둣방에 들어가 구두를 닦았다. 중고등학생이 돼서도 쉬는 날에는 주유소와 목공소를 돌며 끝없는 아르바이트를 이어갔다.

대학 갈 때가 되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느날 갑자기 700만원의 고지서가 날라왔어요. 가족 중 한 명이 제 명의로 카드를 만들어 쓴 거죠. 결국 저는 당장 대학도 포기하고 공장에 출근해서 3년간 일을 하며 그 빚을 다 갚았습니다. 당시 오죽 고생을 했으면 제 손이 할아버지 손처럼 쭈글해져서 제대로 펴지도 못했어요. 너무 일찍이 삶의 무게를 느껴버린 겁니다.”

누가 봐도 행복의 조건이 없는 삶, 하지만 손 목사의 입술은 불평과 원망을 뱉지 않았다. 그는 “40대가 되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돌이켜 보니, 답은 어머니였습니다. 믿음 좋으셨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실패와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모친은 언제나 기쁨이 넘쳤다. “어머니는 힘든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발버둥을 치셨어요. 일이 아무리 늦게 끝나도 다음날 꼭 저를 데리고 새벽기도에 나가셨죠. 밤에는 잠든 제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셨고요. 그때 제 얼굴 위로 떨어진 어머니의 따뜻한 눈물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어디 그 뿐이랴. 손 목사의 어머니는 토요일마다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전도하셨다. 역전에서 김을 팔면서도 예수 믿으세요! 그래야 행복합니다라며 복음을 외쳤다. 주일에는 하루종일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이었다.

그는 워낙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하루 네 번씩 말씀을 들으니까 제 안에 믿음이 자라났다. 무엇보다 교회 사람들이 정말 많은 사랑을 주신 덕분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행복을 누릴 줄로 믿는다. 훗날 만든 곡 <어머니의 기도>에는 이러한 간증이 깊이 녹아있다고 귀띔했다.

 

주의 자녀 된 행복
손경민 이름 세 글자가 널리 알려진 지는 겨우 3년 남짓이다. 이제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그를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터. 손 목사는 몰라도 <은혜><행복>이란 찬양 만큼은 어디서라도 꼭 한 번쯤은 들어보고 불러본 적이 있으리라.

그러나 그가 처음 찬양 사역에 발을 들인 때는 2000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손 목사를 무려 20여년 동안 훈련시키신 셈. 이 기간 그는 다른 뮤지션들의 음반 편곡부터 집회 전 악기와 스피커를 나르는 허드렛일까지 마다치 않고 기반을 닦았다.

주님 앞에서 저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역자일 겁니다. 사실 처음에는 작사·작곡이 저의 달란트인 줄도 몰랐어요. 다만 하나님께서 여러 경험을 토대로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곡을 만들게 시키신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실제로 손 목사는 하나의 곡을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 철저한 검증의 훈련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CCM <은혜>가 태동한 배경을 함께 들려주었다.

이 곡은 2018년 목사 안수를 앞두고 가사를 써둔 상태였어요. 그런데 2020년 코로나를 지나면서 이전에 내 삶에서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란 질문이 내 삶에서 은혜 아닌 것이 무엇인가로 바뀌었죠. 하나님이 여기까지 저를 인도하신 과정을 돌아보니 다 값없이 받은 것이더라고요. 믿음의 어머니를 주신 것도, 부족한 저를 사용해 주신 것도 전부 은혜였습니다.”

그는 <충만>이란 곡을 만들면서 겪은 일도 전해주었다. 이 곡을 쓸 무렵 손 목사는 신뢰하던 지인이 자신의 전 재산을 훔쳐 도망가는 배신의 아픔을 당했다. 망연자실해서 작업실에 앉아있는데 컴퓨터 바탕화면에 작곡 중이던 <충만>의 가사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순간 하나님이 저에게 경민아, 네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도 진짜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만하다고 고백할 수 있니?’라고 물어보시는 것 같았어요. 저는 회개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 하나님께서 긍휼과 용서, 그리고 평안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후 신실하신 하나님은 잃어버린 물질마저도 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CCM <감사> 또한 손 목사의 신앙이 그대로 녹아있는 귀한 찬양이다. 그는 데살로니가전서 518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가사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사방이 담으로 꽉 막힌 것처럼 좌절스러웠다.

본인은 성대결절로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둘째 아들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셋째를 낳은지 얼마 안 된 아내는 산후조리도 못한 채 병간호에 투입됐다. 그 와중에 어머니마저 무릎이 아파 수술을 기다리던 터라 암담한 심경이었다.

낙심하던 찰나 차 안에서 찬양 한 곡이 흘러나왔다. 일전에 작업해둔 찬양 <감사>였다. “‘내 뜻대로 안 돼도 주가 인도하신 것 감사라는 가사가 들리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가사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감사를 말하던 제 모습이 부끄럽고 죄송했기 때문이죠.”

이처럼 그의 찬양 하나 하나에는 하나님을 향한 손 목사의 꾸밈 없고 진실한 신앙이 묻어나있다. 그리고 이를 접한 크리스천들은 더 큰 간증들을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그는 간증이나 찬양집회서 만나는 성도들마다 그렇게 엉엉 우신다. 잃어버린 감사를 찾았다는 사람부터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분들까지 그 이유도 참 다양하다그럴 때면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하시고 영광받으신다는 걸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멘토로 삼는 최용덕 작곡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작사·작곡가가 찬양의 가사대로 삶을 살아낼 때, 비로소 주님은 그 곡을 통해 은혜를 흘려 보내신다. 그래서 저의 가장 큰 기도제목 역시 나의 입술에서 나오는 고백이 거짓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 세대 찬양하길
요즘 손 목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손 목사를 찾는 곳이 늘면서 올 한해 일정이 연초부터 빼곡이 들어찼다.

사실 음악적 재능과 실력을 타고난 그는 한때 TV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미스트롯등의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처음 한두 번은 설렐 뿐 계속 작업하다 보니 그냥 일이 되어버렸다는 손 목사는 인간을 지으신 목적대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가장 기쁘다고 겸손히 말했다.

그의 신념은 찬양 <행복>에도 잘 드러나있다. “어느덧 저 역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는데요.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기도하며 주 뜻대로 사는 삶이 진정한 행복임을 믿고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이 같은 바람에서 손 목사는 <행복>을 보다 밝게 편곡해 자녀들과 직접 부르는 앨범도 기획 중이다. 앞으로 온 세대가 함께 부를 곡을 작업하겠다는 그는 말씀 중심의 복음적인 찬양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세대를 잇는 것이 저의 새로운 소명이자 소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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