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마음의 길을 만드는 추모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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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마음의 길을 만드는 추모의례
  • 곽혜신 애도상담사(각당복지재단)
  • 승인 2023.06.05 2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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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생각하다 12

우리들의 삶은 의례(Ritual)와 더불어 사는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일 잔치, 돌, 생일, 입학식, 졸업식, 성인식, 약혼식, 결혼식, 금혼식, 임관식, 장례식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윤득형 박사는 <슬픔학개론>에서 잘 구성된 추모의례는 그저 형식적인 예식이 아니라 치유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라고 표현했다.

몇 해 전, 부모를 사별한 집단의 애도상담을 진행하며 중반기가 넘어갈 때 즈음에 추모의례를 갖는 시간을 마련했던 적이 있다. 이 시간은 고인을 포함한 사진들을 활용해 콜라주를 먼저 만들고 고인에게 쓴 편지와 가져온 유품을 놓고 고인에 대한 추모의례를 갖는 시간이다.

당시 1년 전에 아버지를 사별한 20대 후반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생전의 아버지에 대해 ‘한평생 트럭을 끌고 다니시며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셨고 평생 스스로 변변한 옷 하나 사 입지 않으신 아버지셨다’고 애써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녀의 담담한 어조는 어쩌면 슬픔의 뜨거운 감정을 이성의 차가운 머리로 누르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진을 가지고 콜라주 작품을 만들면서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정작 사랑 표현에 인색했던 자신이었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늦은 인사지만 글과 자신의 마음을 담은 콜라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보며 끝내 울컥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유품인 작은 명품지갑을 꺼냈다. 돌아가시기 전에 큰 마음 먹고 처음 사드린 명품지갑은 1년도 채 써보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유품이 되었다며 그녀는 정말 새 제품과 다를 바 없는 자그마한 명품지갑을 꺼내 추모의례 단상에 다시 한 번 아버지께 전하는 마음으로 살포시 올려놓았다. 고인과 나만의 조용한 마음의 대화와 안녕의 시간을 갖는 추모의례는 내 마음의 길을 만드는 일과 같다. 

탐 드라이버는 ‘의례를 만드는 것은 길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례에 대해 추모하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역할과 잠시의 추모의례 시간이지만 사별자들은 고인의 죽음을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며 이것은 일상의 삶을 지속시키도록 할 뿐 아니라 삶의 어두운 순간에 길을 찾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추모의례는 이렇게 사별자들에게 평범한 귀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에 안정되고 묵묵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사별자들은 추모의례 시간을 갖기 전 부정적 감정들로 가득 찼던 마음을 하나둘씩 꺼내놓고 슬픔과 함께 다양한 감정을 발견하며 그 안에 숨어있던 긍정적 감정과 의미를 재발견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겪어내는 데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추모의례 시간으로 고인과 조용하고도 의미있는 만남을 가진 후에는 이전과는 다른 편안함과 안정감을 발견하고 평안한 일상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고인을 향한 마음의 길을 만드는 추모의례의 긍정적인 역할을 잘 알고 있기에 애도상담에 참여하는 이들에게는 적절한 타이밍에 추모의례의 시간을 꼭 만들어 드리고 있다. 지금도 용기 내 애도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정성스러운 자신만의 작은 추모의례 공간을 만들고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경험을 한다.

사별을 겪은 이들에게 추모의례는 개인이 겪는 사별의 슬픔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인과 자신을 위한 정서적 회복과 치유의 힘을 얻게 하는 또 하나의 애도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별을 겪은 이들에게 마음의 길을 만드는 의미있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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