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발빠진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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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발빠진 쥐
  • 임문혁 장로
  • 승인 2023.05.2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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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혁 장로
임문혁 장로/서울 아현교회 원로장로·시인·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전철은 요즈음 내가 가장 애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전철은 요즘 더욱 심해진 교통체증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정확한 시간에 나를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레일 위를 달리기 때문에 버스나 승용차처럼 도로의 굴곡에 따라 요동치지 않아서 책을 읽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냉난방이 잘 되어 있어 춥지도 덥지도 않다. 전철을 타고 객차 안의 승객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을 살까, 나름대로 이런 저런 생각을 펼쳐보는 것도 이동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는 방법 중의 하나다. 게다가 나 같은 노년층에게는 무임승차라는 혜택까지 준다. 그래서 나는 전철을 고맙게 잘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전철역에서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좀 이상한 안내 방송이 나오곤 하는 것이었다.

“발빠진 쥐! 발빠진 쥐!”

전동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 어김없이 이런 안내방송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아하, 요즈음은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무척 사랑해서 보살피고 기르고 그러는데, 지하철 공사에서는 참 특이하게도 쥐 같은 동물에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고 있다는 말인가? 지하철역 구내의 음식물 쓰레기나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을 쥐들로 하여금 먹어치우게 하려는 것인가? 에이, 그런 것보다 쥐가 더 골치 아플 텐데….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무슨 신통한 쥐의 효용이나 용도가 있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궁금증만 늘어났다. 그냥 흔하디흔한 그런 쥐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새로운 특별한 종류의 쥐가 있는가? 내 눈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쥐가 어쩌다 발이 빠졌을까? 쥐가 발이 빠졌는데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 발빠진 쥐를 발견하면 잘 구조해주라는 말인가?

하도 궁금하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찾아가 역무원에게 물었다.

“발빠진 쥐! 발빠진 쥐!” 이런 안내방송이 계속 나오는데, 발빠진 쥐가 어디 있나요?

“하하하! 쥐는 없구요, 어르신 <발빠짐 주의> 하시라구요.”

아하 이런 세상에! 내가 방송을 잘못 들었구나. 순간, 얼른 보청기를 더듬어본다.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틈새에 빠진 건 쥐가 아니라 칠십 넘긴 무자생 쥐띠 내 고막이었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불완전하다. 얼마든지 잘못 보고, 잘못 듣고, 잘못 느낄 수 있다. 성경에 보면 발람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자가 자기가 가는 길을 막아선 것을 보지 못했다. 나귀는 눈으로 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뒷걸음질 쳤는데, 발람은 전혀 보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나귀가 입을 열어 말을 했겠는가. 엘리 제사장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물론 사무엘도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처음에는 그분이 하나님이신 줄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줄을 알았을 때 정확하게 듣고 정확하게 전하고 그 말씀 따라 살았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듣는다 하면서 잘못 오해하지는 않는지, 혹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데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하는 일은 없는지 깊이 살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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