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바울의 시민권과 로마의 법률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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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중간사] 바울의 시민권과 로마의 법률제도
  • 김병국 교수
  • 승인 2023.05.1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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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1호 김병국 교수의 신구약 중간사 이야기 (10)
김병국 교수(백석대·신약신학)
김병국 교수(백석대·신약신학)

바울은 빌립보에서 귀신들렸던 여종을 치료해 주었습니다(행 16:18). 그러자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끌고 가서는 관리들에게 넘깁니다(행 16:29). 고소인의 말을 들은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옥터가 움직여서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자결을 하려다가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다음이 재미있습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바울을 옥에 가두었던 관리들이 부하를 시켜서 바울 일행을 석방하라고 지시합니다. 그 말을 들은 간수는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하고 곧장 바울에게 가서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행 16:36)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바울은 ‘아, 그래요? 이렇게 감사할 때가 있나.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화를 내면서)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행 16:37)라고 큰 소리를 칩니다.


당시 로마법은 로마 시민권자와 기타의 사람들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정식 재판을 거쳐서 유죄가 확정되지 않는 이상 태형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민권자인 바울을 사람들 앞에서 실컷 때렸으니 책임자들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부하들이 상관들에게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보고하자 상관들은 크게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 길로 당장 바울에게 와서 용서를 빌고, 그곳을 떠날 줄 것을 바울 일행에게 공손하게 요청합니다(행 16:39).


이번에도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잡힙니다. 하지만 바울이 대처하는 방식이 빌립보에 있을 때와는 다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는 무방비로 매를 다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군사들이 심문을 하기 위해 가죽 줄로 그를 묶으려 하자 백부장에게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행 22:25)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바울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와 달리 예루살렘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차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단순하게 빌립보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겨를이 없었는데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고 예루살렘에서는 권리를 행사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견해는 바울이 빌립보에서도 자신의 로마 시민권자로서의 권리를 잊고 있었을 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빌립보에서는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자신의 권리를 너무 강하게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은혜롭지가 않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예루살렘에서는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기꺼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다는 주장입니다.

백석대·신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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