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안의 ‘페레그리노스의 죽음’, 기독교를 공격한 책으로 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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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안의 ‘페레그리노스의 죽음’, 기독교를 공격한 책으로 곡해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3.04.19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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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147) - 헬라로마사회에서의 기독교 비판(3)

루시안의 ‘페레그리노스의 죽음’에 대해 말하기 전에 그의 저작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루시안은 80권 이상의 책을 남긴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초기 작품으로는 ‘유산을 상실한 사람,’ ‘파리’ 등이 있는데 예술성과 흥미 위주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고전적 철학과 그리스 희극을 연결하여 자신의 독특한 희극적 풍자 작품을 남겼는데, 이런 유의 작품으로는 <제욱시스 Zeuxis>, <집을 논하다> 등이 있고, <신의 대화>, <바다 위의 대화> 등은 그리스 신들을 풍자한 작품이었다. 그의 성숙기의 작품으로는 <저승에서의 대화>, <심문받은 제우스>, <이카로메니포스>, <꿈>, <니글리노스>(Nigglinos) 등이 있다. 이런 작품에서는 당시 사회제도를 비판하고 종교 미신, 부를 위한 나쁜 행실, 폭력정치, 도덕적 타락 등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데모낙스’나 ‘알렉산더’ 같은 작품은 그의 후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그는 165~166년 경에는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Πῶς δεῖ Ἱστορίαν συγγράφειν)라는 책을 썼는데, 고대의 역사 이론에 대한 책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이다. 당시의 역사 저작물에 대한 비평적 작품으로 인습과 모방, 불필요한 수식과 과장을 반대하고 사실을 존중하자고 제창했다.

루시안의 작품 중에서 <진실한 이야기/Ἀληθῶν Διηγημάτων Α>는 대표적인 저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루시안은 이 책에서 대서양을 건너 여행하면서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탐험을 하는 황당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즉 주인공이 5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세상을 떠돌며 겪은 단편 소설인데 사람이 달 위를 날아다닌다거나 큰 물고기 뱃속에서 생활한다거나 하는 허황된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이 책이 후대 문학에 영향을 주었는데 조나단 스위프트의 ‘갈리버여행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토마스 모어나 에라스무스, 볼테르, 혹은 에스파냐의 세르반테스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가 취급할 <페레그리노스의 죽음/De Morte Peregrini>이란 책은 루시안이 크로니우스(Cronius)에게 보내는 서신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은 45절(혹은 項)로 구성되어 있다. 분량이 길지 않다는 점에서 단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10포인트 줄 간격 160으로 할 때 A4 용지 12매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기독교권에서 기독교를 비난한 작품으로 알려져 왔고, 가르쳐져 왔다. 미국 남침례교 순회설교자인 폴 워셔(Paul Washer)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설교에서 루시안을 ‘고대의 불테르’라고 불렀다. 그는 설교를 통해 “루시안은 그의 작품 <페레그리누스의 죽음>에서, 크리스천들이야말로 ‘그리스의 신들을 거부하고, 대신 십자가에 달린 궤변가를 숭배하며 그의 법에 따라 사는 가련한 악마들’이라고 조롱한다”라고 한 바 있다. 루시안을 ‘고대의 볼테르’(Ancient Voltaire)라고 부른 첫 사람은 공산주의 창시자 엥겔스였다.

무신론자로서 루시안이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짚고 넘어갈 것은 그가 쓴 <페레그리노스의 죽음>이란 책이 기독교를 비난하기 위해 쓴 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이 작품을 곡해하거나 왜곡한 점은 이순형 박사에 의하면 고대 중동 세계에 대해 그리스어로 기록된 10세기의 비잔틴 사전인 <수다/Suda>의 편파적인 기록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곡해는 오랫동안 계속되어 기독교권의 기록에서 루시안의 이 책은 기독교를 공격한 작품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기독교에 대한 언급은 11~13항, 그리고 16항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기록을 통해 이방인이 기독교를 어떻게 인식했던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간주되어 왔다.            

백석대·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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