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의 영화읽기]폭력의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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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영화읽기]폭력의 나비효과
  • 최성수 박사(문화선교연구원 칼럼니스트, 캄보디아 선교사)
  • 승인 2023.04.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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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자매](이승원 감독, 드라마, 15세, 2021)

영화 <세 자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세 자매의 현재와 과거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들의 미래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소망을 갖고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곧 감독은 현재 진행되는 세 자매 각각의 삶을 보여주면서 세 자매가 공유하고 있는, 그러나 숨기고 싶은 과거를 조금씩 드러내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세 자매로 그것을 직접 직면하도록 하면서 영화를 마무리했다. 특히 바닷가에서 옛 추억을 되새기며 보내는 세 자매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이 소망을 갖고 그녀들의 치유된 삶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세 자매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감독의 의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가정 폭력의 심각한 폐해를 고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과거에 매여 살 때 현재의 삶이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직면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현재와 전혀 다른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나비효과’이다.

영화는 구체적으로 의식할 순 없어도 아픈 과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왜곡되고 고통스러운 삶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어린 시절에 겪은 가정 폭력이 얼마나 심각하게 인간의 성격과 인격 그리고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폭로하면서 그 치유의 길을 보인다. 부정적인 경험의 나비효과를 말할 수 있다면, 치유의 경험 역시 어느 정도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현실 속의 그녀들의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

영화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세 자매가 있다. 첫째는 과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해도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은 서슴지 않는다. 둘째는 겉으로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가정적으로 종교(기독교) 폭력의 가해자로 군림하며 살다가 결국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고 가정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리고 셋째는 작가를 지망하는 골칫덩어리로서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는 캐릭터다. 자기 폭력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도 아들에 대한 남편의 폭력에는 지나칠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비록 양상은 달라도 세 자매 모두 이중성을 보인다.

영화 이야기는 주로 둘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세 자매 모두에게 이중성이 나타나고 있지만, 특히 기독교인인 그녀의 삶에서 느껴지는 가식적인 이중성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두 자매의 삶 역시 정상성에서 많이 벗어나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불편함을 유발한 더욱더 큰 문제는 정작 본인들은 이중성을 갖고 살아가는 현실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자기 주변의 사람들, 특히 가족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관객은 다 아는데 그녀들만 모르니, 보는 내내 답답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세 자매의 비틀어진 인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제기되는 질문이다. 단서는 세 자매가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밝혀진다. 곧 어린 시절 경험한 아버지의 가정 폭력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아버지가 현재 교회의 장로라는 사실. 이것을 알게 된 것 자체가 반전과 같은 충격이었지만, 여기에 더해 목사님을 모시고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예배하는 중에 영화 이야기에서 꽁꽁 감추어 두었던 막내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출현과 잘 차려진 식탁을 향한 그의 오줌 세례로 인해 그동안 가족 전체를 감싸고 있던 거짓과 위선의 포장지는 일순간에 뜯긴다. 그동안 깊이 묻어두었던 과거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난 것이다. 무의식의 마그마가 분출되는 순간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결단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 아버지의 가정 폭력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지는 막내의 돌발적 일탈과 둘째의 외침을 통해 폭로되는데, 둘째는 아버지를 향해 절규하면서 그동안 가족이 당한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드러내며 가족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한다.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이 터지듯, 그동안의 답답함과 불편함이 일순간 해결되는 순간이다.

한 가족 내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되는 폭력이 가족 구성원의 인생과 미래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사회관계를 실제로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 폭력의 나비효과를 잘 보여준 영화라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기 위해선 과거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도 보여주었다.

가정 폭력은 그것이 미래에 미치는 파괴력을 생각한다면 결단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가정 폭력을 이미 삶의 한 부분으로 경험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것에 대한 기억이 끔찍하다고 해서 과거에서 벗어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치유를 위해 혹은 파국적 미래를 막기 위해선 오히려 당당하게 직면함으로써 그 그늘에서 속히 벗어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폭력의 대물림과 치료

그렇다면 과거에 당당하게 직면하기만 하면 온전한 회복이 가능할까? 이 질문을 두고 고민하며 세 자매의 삶과 과거 그리고 양자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필자에게 떠오른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인간 이중성의 연대기에 관한 질문이다. 달리 말해서 인간의 이중성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가? 아버지의 이중성, 세 자매의 이중성,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인격과 삶 그리고 인간관계에 미치는 폐해를 생각한다면, 대답을 찾는 일이 더욱 절실해진다.

폭력이 대물림되듯이 가정 폭력으로 유발된 이중성 역시 대물림된다. 왜냐하면 가족을 떠날 수 없고 폭력의 당사자를 고발할 수 없다면, 피해자는 가족 관계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가는 것을 일상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대물림되는 폭력의 그늘에서, 세 자매의 이중성에서 볼 수 있듯이, 또 다른 삶의 현장에서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성의 기원은 다양하겠지만, <세 자매>는 그것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각종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

인간의 이중성은 의식적인 의지에 따른 것이든 무의식에 따른 것이든 치료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인격을 파괴하고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며, 더 나아가서 사회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범이라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개입을 기도하면서 동시에 꾸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실천 능력을 길러야 한다. 세 자매를 포함한 가족의 치유는 과거를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직면함으로써, 곧 큰 틀에서 보면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이로써 의미 있는 삶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도록 했다.

최성수 박사(문화선교연구원 칼럼니스트, 캄보디아 선교사)
최성수 박사(문화선교연구원 칼럼니스트, 캄보디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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