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칼럼]순서 없는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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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칼럼]순서 없는 이별
  • 최혁 웰다잉강사(각당복지재단)
  • 승인 2023.04.12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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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죽음을생각하다 7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명확한 진실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어떤 정해진 순서에 의해 진행되는 일에 대해서는 으레 그렇다 생각하지만 순서가 바뀌어 진행되는 일에는 왠지 모를 부담감이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죽음의 순서에서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게 됨은 무척이나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다음은 60대 딸의 장례를 치르게 된 80대 노부의 사례이다. 수년 전 봄날에 60대 여성의 시신이 장례식장으로 운구되었고, 곧이어 유가족으로 보이는 노인이 한 분 도착했다. 이분은 로비 소파에 앉아서 한참 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다 볼 뿐, 아무런 행동이나 말이 없었다. 일반적인 유가족의 모습이 아니기에 무언가 개입이 필요해 보였다. 살며시 다가가 인사를 하고 곁에 앉아 손을 잡아드리며, 고인과의 관계를 물어보았더니 고인이 자신의 딸이라고 하였다. 많이 힘들어 보여 등을 토닥여드렸고, 그간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딸은 선천성 소아마비였다고 한다. 돌보느라 많이 힘들긴 했지만 첫 아이라서 너무나도 소중했고 기쁨을 주는 아이였다고 한다. 학교를 가든 어디를 가든 본인이 업고 다녔고 지금도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아픈 딸을 돌보기 위해 매일매일 꾸준하게 운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딸의 선물’이라고 말하였다.

대화 도중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장례식장으로 급히 들어오면서 고인을 찾았다. 고인의 동생들이었다. 아픈 첫딸을 돌보는 데 온 마음을 다하느라 터울이 20여 년이나 난 것이었다. 첫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장례 후 부친을 다시금 면담하였는데, 장례를 잘 치러서 마음이 평안하다 말씀하시지만 깊은 허전함이 느껴졌다. 지금껏 딸을 돌보기 위하여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에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다닐 수 있으니 자전거를 타고 꼭 놀러오겠다고 하시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자녀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에게는 아이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모두 슬픈 일이기에 가장 슬픈 죽음이라는 기준을 세울 수는 없겠지만, 자녀의 죽음은 통상적인 순서적인 관념을 깨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일부인 자녀의 죽음은 삶의 의미를 깨뜨리기에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장애를 가진 딸을 평생 동안 돌보고 헌신해온 80대 노인에게 그 딸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어떤 것일까?

우리의 삶에서 죽음은 막연한 것이 아닌 ‘현실의 일’이기에, 온 가족이 죽음과 죽음준비에 대하여 함께 얘기해본다면, 현재의 삶이 더욱 의미 있고 가족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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