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아이부터,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
상태바
“무조건 아이부터,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3.04.05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활을 살아내는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14년 동안 2,063명 천하보다 귀한 생명 지켜내
시설 종사자와 후원자·자원봉사자 삼박자 협업 

이렇게 가파른 언덕을 간난 아기를 안고 걸어 올라온 어린 엄마들은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서울 관악구 난곡로 대로에서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센터까지 약 5백 미터 골목길은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어쩌면 캄캄한 밤에, 어쩌면 새벽녘에 홀로 출산한 후 작디작은 생명을 안은 그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을 것이다. 아직 몸도 추스르지 못한 채 택시를 탔더라도 누가 볼까 멀찍이 내려 한참을 걸어왔을 것이다. 

2009년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가 시작한 ‘베이비박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이들이 찾아오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다. 5년 전 탐방했을 땐 약 1,300명 아기들이 베이비박스를 거쳤다고 기사가 나갔다. 부활절을 앞두고 다시 찾아간 지난 3일에는 600명 이상 늘어 2,063명의 아기가 이곳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영아 유기, 사망이라는 끔찍한 단어가 오르내리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센터에서 만났다. 

황민숙 센터장이 아기들을 담아내는 베이비박스를 열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베이비박스는 항상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다.

유명해졌지만 후원은 줄어
주사랑공동체와 이종락 목사는 2018년보다 더 유명해져 있었다. 유기될 처지에 있는 아기를 살려내는 베이비박스를 모르는 국민도 이젠 없을 것 같다. 인지도가 올라가며 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끊이지 않고, 후원자도 다른 복지시설보다 많아졌지 않냐고 질문했다. 

베이비박스센터 황민숙 센터장은 애써 웃음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네요. 그런데 우리는 정부 지원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자체도 관심만 가질 뿐 아무것도 없어요. 재정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항상 채워집니다. 부족하면 채워진다는 것이 우리의 간증이지요.”

최근 물가가 상승하면서 후원을 중단하겠다며 미안해하는 전화가 크게 늘었다. 후원이 줄더라도 아이들이 머무는 방은 사시사철 따뜻해야 한다. 베이비박스 안 온기는 지켜주어야 한다. 아이를 살리기로 하고 직접 키워내고 있는 엄마들에게 육아물품도 꼬박꼬박 보내줘야 한다. 

양창수 팀장은 “그냥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다”면서 “출생신고를 할 수 없지만, 아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엄마들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는 사역”이라고 말했다. 

아기를 지키로 한 엄마들은 가파른 언덕을 걸어올라와 베이비박스로 향했을 것이다. 주사랑공동체는 엄마의 97%와 상담하며 아기와 엄마가 행복할 수 이는 방안을 함께 찾고 있다. 

“어머니 잠시만요…”
아기를 안고 찾아온 엄마들은 직접 아기를 안고 들어가 상담할 수 있는 ‘베이비룸’과 왼쪽 계단을 올라가면 우측 벽에 아기만 넣을 수 있는 ‘베이비박스’를 마주하게 된다. 

센터 안에서는 보육사와 상담사 선생님들이 상주하고 있고, 베이비룸이나 베이비박스 문이 열리면 벨이 울리게 된다. 벨소리를 들으면 보육사는 베이비박스로 달려가 ‘아기’를 가장 먼저 품에 안고, 상담사는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잠시만요…”하고 엄마를 붙잡는다. 대화하고 상담을 위해서다.

이은혜 상담사는 엄마를 만나면 “아기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어주어서 고맙다”는 말부터 한다.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말 못했던 마음을 위로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엄마들은 펑펑 눈물을 쏟곤 한다. 주변에선 아기를 포기하라는 권유만 들었을 그녀가 처음 듣는 위로였을지 모른다.

“엄마가 직접 아기를 키워야 한다고 설득하죠. 기다려주고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떻게든 아기를 지키려는 마음을 알기 때문에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어요. 베이비박스는 아기들이 두 번째 태어나는 곳입니다. 원치 않는 아이가 왜 태어나야 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같아요.”

이종락 목사는 엄마를 직접 만나 대화로 상담하도록 베이비박스센터 기준을 세워두고 있다. 이 목사는 지쳐있을 엄마들을 위로하며 “엄마가 아기를 직접 키우고 기도도 많이 해줘야 한다. 혹시 키우지 못하더라도 어딘가 있을 아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조언하곤 한다. 성에 대한 소중함도 들려주고 복음도 전한다. 지금은 엄마의 97%를 직접 상담하고 있다. 

“우리는 무조건 아이를 먼저 보호하고, 엄마들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도록 도와드려요. 당장 여건이 안 되는 경우는 위탁가정이든 시설로 갈 수 있도록 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하면, 방법을 함께 찾아줍니다. 얼마 전에는 내일 시설로 아기를 보내야 하는데 엄마가 찾아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교회도 나가고 아이도 잘 키운답니다.”

부모와의 상담은 엄마들의 양육 의지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엄마가 키우는 원가족 복귀율이 17%나 됐다. 입양을 위해 출생신고를 해주겠다는 엄마도 17%가 됐다. 그럼에도 66%의 아이들은 보육원 같은 시설로 갈 수밖에 없었다. 

베이비박스를 만들어 아기를 구해내고 있는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가 아기를 안고 미소짓고 있다. 이 목사는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보호출산법과 입양특례법’을 위해 한국교회 성도들을 향해 동행을 요청했다.

아기 유기를 조장한다고? 
베이비박스를 찾아오는 엄마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다. 어느 고등학생은 임신 6주차 때 태동을 느끼고는 낙태를 포기하고 생명을 지켜내 찾아왔다. 직접 키우지 못해도 최선을 다해 해줄 수 있는 것이 태교라고 생각해 잘 준비해 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종락 목사와 주사랑공동체는 아기 유기를 조장한다는 편견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목사는 2007년 겨울 교회 문 앞 생선박스에 두고 간 신생아를 키운 것을 계기로, 외국 사례를 도입해 ‘베이비박스’를 제작했다. 아내와 둘이 수년 동안 놓아두고 간 아기들을 돌봐야 했다. 부활의 주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아기를 땅에 묻으려다 포기하고 흙이 범벅인 채 찾아온 이도 있었다. 베이비박스가 있기 때문에 아이를 버린다는 주장에는 억울할 따름이다. 

주사랑공동체는 재단법인 설립인가도 받았지만 여전히 복지시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만든 2012년 개정 입양특례법이다. 친부모를 쉽게 찾도록 하기 위한 취지지만, 오히려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출신생고를 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유기를 부추기는 격이다. 입양조건도 까다로워지면서 입양되는 비율도 줄어드는 부작용이 계속되고 있다. 

이종락 목사는 ‘지켜진 아동의 가정보호 최우선 조치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를 만들어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과 함께 ‘보호출산법’ 제정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목사는 “출생신고 후 입양을 강제하는 독소조항으로 많은 어린 생명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베이비박스로 남겨진 아이들의 경우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줄을 잇고 있다”며 “실제 2011년 4.6명이던 유기아동 수가 2018년 9.8명으로 두배 이상 늘어났다”고 법 통과를 위해 한국교회가 함께해주길 바란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베이비박스센터는 시설 종사자와 자원봉사자, 후원자가 함께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2063명 아기들이 생명을 지켜냈다.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이 이곳에
베이비박스는 다른 복지시설보다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다. 생명을 살린다는 보람이 없으면 쉽지 않은 길이다. 그들 곁에 소중한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기 때문에 엄마와 아기들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 

베이비박스 1층 아기들이 머무는 공간은 그야말로 먼지 한 톨 없다. 24시간 아기를 돌봐야 하는 베이비박스는 하루 네 타임으로 나눠 상담사와 보육사, 자원봉사자가 일하고 있다. 아기를 키우기로 결심한 엄마에게는 3년 동안 물품을 보내주고 있다. 아기 개월 수와 성별에 맞춰 100~150개 맞춤형 물품을 보내주는데 많은 정성과 손길이 필요하다. 아기를 돌보고 물품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물품을 포장하고… 시설이 오래돼 고쳐야 할 곳이 많은데 페인트칠 한번 하기 어렵다. 

방송을 보고 봉사자로 참여한 이보람 씨는 매주 2차례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다. 이 씨는 “모든 봉사자들이 아기를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고 보람을 크게 느낀다”며 “오히려 이 천사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다”고 봉사자로서 소감을 들려주었다. 

황정하 보육사는 “다른 입양기관에서 일하다 베이비박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에 다니던 시설보다 힘든 것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 같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가정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보람이 정말 크다”고 이야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