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칼럼]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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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칼럼]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 오혜련 (각당복지재단 회장)
  • 승인 2023.03.31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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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생각하다5

미국, 유럽 등 서구에서는 죽음교육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학교에서 죽음준비교육을 하는 나라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연구가 늘어나고 있으나 역사가 짧고, 주로 노인복지관을 중심으로 죽음준비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사회교육 차원의 죽음준비교육의 출발은 1991년 故김옥라 박사가 각당복지재단에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를 설립하고 죽음준비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김옥라 박사가 죽음 주제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1990년 남편 故각당 라익진 박사가 일본에 치료차 갔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일이었다. 갈 때는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귀국길의 남편은 화물칸에 실린 차디찬 시신이었다. 김옥라 박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아왔지만 천국에 대한 믿음뿐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몇 달간 고통 속을 헤매며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이냐를 놓고 깊은 사색에 빠졌다.

그때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는다. 이 죽음을 탁상 위에 올려놓고 공론에 부치라.” 이미 각당복지재단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을 길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외국의 문헌들을 꼼꼼히 읽고 있었던 김옥라 박사는 외국에서는 죽음준비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옥라 박사는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가까운 분들 중에 배우자를 떠나보낸 분들을 모아 일주일에 한 번씩 조찬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 윤보선 전 대통령 영부인 공덕귀 여사께서 죽음 관련 주제를 가지고 세미나를 열자고 제안하였다. 연세대 김동길 교수와 서강대 김인자 교수를 연사로 모신 첫 죽음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천 명 가까운 청중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김옥라 박사는 본격적으로 죽음 관련 공개강좌를 열기 시작하였다.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의 설립 취지는 ‘죽음의 문제를 사색하고 탐구하며, 참된 죽음준비가 곧 참된 삶의 준비라는 진리를 배우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관한 강연회, 세미나 등 죽음준비교육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후 32년 동안 이 목표를 향해 외길을 걸어왔다. 철학, 종교, 심리학, 의학, 사회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죽음의 문제를 탐구하여 발표하였다. 죽음준비교육의 기틀을 세워 수많은 죽음교육 지도자들을 배출하였고, 죽음준비교육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기반을 만들었다.

이 모든 일이 김옥라 박사의 남편인 故각당 라익진 박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성경말씀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나니…’라는 구절이 있다. 남편의 죽음이 한 사람의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가 탄생했고, 오늘날까지 조용히, 그러나 꾸준하고 깊이 있게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오고 있다.

故 김옥라 박사와 남편 라익진 박사.
故 김옥라 박사와 남편 라익진 박사의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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