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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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
  • 황예찬 목사
  • 승인 2023.03.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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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찬 목사 / 인성초등학교 교목

황 목사의 ‘초딩 교목 에피소드’ ①
황예찬 목사가 지난 부활절 예배에서 설교를 전하고 있다.
황예찬 목사 / 인성초등학교 교목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제자 도마 분장을 하고 설교를 전하고 있는 황예찬 목사.

오늘도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잔뜩 교목실에 몰려왔다. 그중 한 아이가 내 책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쓰지 않아 내팽개쳐 놓았던 핸드폰 보조 배터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묻는다.

“목사님, 이게 뭐죠?”

나도 쓰지 않던 물건이라 순간 무엇인지 몰라서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글…쎄…?” 

그러자 아이가 말한다.

“어? 왜 당황하시죠 목사님? 알겠다!! 이거 전자담배죠!?” 

그 말을 듣고 재밌어서 웃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야! 목사님 담배 피우신데!”라고 어떤 녀석이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복도를 지나가던 다른 녀석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그 소식을 소리쳐 알리기(?) 시작했다. 

난 졸지에 학교 내 ‘교목실’에서 흡연한 목사님이 되고 말았다. 머리에서 순간적으로 별의별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뭐… 그냥 장난인걸…’ ‘혹여나 집에까지 가서 학부모님께 말하는 거 아닐까?’ ‘담임선생님들이 들으시고 오해하시면 어쩌지?’ 

사소한 일이지만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난 학교에서 이런 이미지였던 것인가? 문득 죄 없이 십자에 달리신 예수님이 생각나며 그 억울함을 백억 분의 일 정도는 공감해 보게 된다.

@추신 
복수를 위해 나보고 전자담배냐고 물어본 그 녀석… 학교에서 바지에 쉬했다고 소문내야겠다.

모든 사역이 다 그렇겠지만 학교 사역을 하다보면 마냥 행복한 순간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상대가 어린이일지라도 때로는 억울한 상황이 벌어질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고, 당황스러운 순간도 있고,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이 사역을 이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내일도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 어제의 적이었던 것 같은 아이가 오늘 다시 웃으며 내게 찾아와준다는 것. 서로 투닥거린 후에도 눈을 흘기지 않고 다시 사탕 하나에 마음을 열어주는 모습이 다릅니다.

이 아이들을 교회에서 만났더라면 이렇게 아이들을 깊게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일에 만나는 한 시간으로는 서로 싸우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투닥거리고 부딪히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복음을 심어주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투닥거림이, 더 많은 억울함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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