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교리, 이단 폐해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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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교리, 이단 폐해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
  • 박찬호 목사(백석대학교 조직신학)
  • 승인 2023.03.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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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목사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1) 신학은 필요한가?

 

성경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지만 성경에 근거하여 체계화한 우리의 신학이나 교리는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을 절대시하거나 교리를 우상화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신학공부를 하지 않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바르게 신앙할 수 있다. 신학이 필요하지만 신앙을 대체할 수는 없다. 교리가 필요하지만 교리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보통 이것을 이신칭의 교리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신칭의 교리를 안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학을 무시하거나 교리를 무시하면 낭패를 겪게 된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우리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 가나안 신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가 활개를 치고 있음은 교리적인 무지에서 기인한다는 지적은 바른 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이 중요하고 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신학이나 교리를 신앙이나 성경보다 앞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단의 폐해를 막기 위해 교리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하고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교리교육보다 우선되는 것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바르게 가르쳐지고 설교되는 것이다.

신학이 필요하고 교리가 필요하지만 보다 우선적인 것은 성경 말씀 자체가 들려지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에 오래 다닌 모태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나 심지어 목회자 자녀들까지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에 속절없이 넘어가는 것을 보면 교회 교육의 실패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실패를 되돌리는 방법이 신학이나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바른 진단이 될 수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성도들을 성경말씀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에 방치한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징 한 가지는 의외로 성경 말씀만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간다는 것이다. 말씀에서 말씀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이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 그들의 논리에 휘둘리게 된다. 신학적인 소양도 중요하지만 성경 말씀 자체에 대한 바른 분별력이 없으면 이단들을 상대하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신천지에서 맨 처음 공부하는 것이 “비유풀이”인데 말하자면 신학교에서 배우는 성경해석학에 해당한다고 한다. 성경해석학을 우리 정통교회에서는 목회자 후보생들을 교육하는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교회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데 신천지에서는 맨 처음에 성경해석학에 해당하는 비유풀이를 통해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교육한다고 한다. 성경 자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교회에서는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하니까 말씀 자체를 가지고 달려들면 정통교회 신자들이 당해내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 66권은 사실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그 내용 또한 난해하다.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보다 간추린 형태의 신학이 필요한 것이다. 교회 안으로 유입되는 신자들을 양육하고 신자들의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가르침의 내용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교육적인 목적과 함께 신학은 외부 세계를 향한 기독교 신앙의 변증이라는 문맥에서 등장하였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무신론자들이라는 혐의를 받았다. 로마에 30만의 신이 있었다 하고 지금 일본에 800만의 신이 있다고 한다. 이런 신들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었으니 당시의 다신론적인 세계에 살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신론자들이라고 오해할만도 하였을 것이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세계와의 힘겨운 싸움을 위해 때로는 그들과 공유하는 철학적인 도구들을 차용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이단들의 출현은 신학의 발전에 일종의 촉매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처음에는 느슨한 형태로 신앙생활이 가능하였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변화가 야기된 것은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과연 정당한지를 논의하는 가운데 신학이 등장한 것이다. 신학은 중요하다. 신학 무용론은 경계해야할 잘못된 주장이다. 하지만 신학이 가지는 이차적이고 도구적 역할을 망각하면 잘못된 신학으로 흐를 위험이 존재한다. 그래서 신앙에 비하면 신학은 이차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교리가 중요하지만 교리보다 성경이 더 우선적이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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