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편하게, 기쁘게 해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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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편하게, 기쁘게 해줍시다!”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3.03.0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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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33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어느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아들이 아버지를 이긴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들은 계속 주먹을 내고, 아버지는 계속 가위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 아들은 계속 이기고 아버지는 계속 질 수밖에. 아들의 손은 가위나 보를 낼 수 없는 주먹손이었다. 

어느 고관이 외국을 방문했다. 상대국에서 환영 만찬을 열고 그를 초대했다.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물이 담긴 접시가 하나 나왔다. 목이 말랐던 그는 얼른 접시를 들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이 물은 빵을 손으로 집기 전에 손을 닦는 물이었다. 뒤늦게 그걸 깨달은 그가 당황해하자, 그를 초대한 상대 나라 고관이 자기 접시를 들더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그 고관을 따라서 두 손으로 접시를 들고 물을 한 모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들의 식사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을 위한 깊은 배려였다.       

어느 교회에 남성 새 신자가 등록을 했다. 교인 수가 많지 않다 보니, 이듬해에 바로 서리집사가 되었다. 제직회를 하는데 교회 생활에 초보인 그가 손을 들더니 여집사의 발언에 토를 달았다. 문제는 발언 내용보다 호칭이었다. 여집사를 향해 대뜸 “집사님!”이 아니라 “아줌마!”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무례한 표현이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회의장은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그 ‘아줌마 집사’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그가 사용한 ‘아줌마’ 호칭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가 초보 집사였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여집사의 별명은 ‘아줌마 집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초보 집사는 아주 겸손하고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었다. 하긴 어느 불교인이 교회에 들러 ‘주지 목사님’이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그 또한 이해를 해야 한다. 그에겐 ‘담임목사’나 ‘주지스님’이나 같은 의미로 이해될 테니 말이다. 

여기저기 초청되어 강의를 한다. 그때마다 지금 이 장면 누가 사진 좀 찍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그 흔한 스마트폰 들고 사진 찍어주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친절하고 배려가 넘치는 교회도 있다. 그런 교회들은 강의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내주곤 한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어떤 교회는 강의를 마치고 잠시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강의 장면을 컬러로 인쇄해서 액자에 넣어 주기도 한다. 참 동작 빠른 교회다.
  


‘존중’이 빠진 배려는 ‘무시’가 되고, ‘역지사지’가 빠진 배려는 무례가 된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배려(Service)다. 상대방을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할(Respect) 때, 내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볼 때(易地思之) 내가 그에게 어떻게 해야 좋을지 깨닫게 된다. 내가 얼마나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지는 언어 표현을 통해 가장 먼저 드러난다. 어떤 할머니가 전철 경로석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던 중년 여성이 할머니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 어쩜 그리 곱게 늙으셨어요?”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중년 여성이 내리자, 혼잣말로 이렇게 불평을 했다. “아니, ‘어쩜 그리 고우세요?’라고 하면 안 되나? ‘곱게 늙었다’가 뭐람?…”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까지는 좋았는데, 역지사지하는 마음을 미처 담지 못했을 때 이런 일이 생긴다. 존중과 역지사지는 배려의 큰 열쇠다. 진정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렇게 행동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까?” ‘존중’은 ‘역지사지’를 만나야 진정한 사랑으로 완성된다. ‘존중’이 빠진 배려는 ‘무시’가 되고, ‘역지사지’가 빠진 배려는 무례가 될 수 있다.  

어떤 유명한 사진작가가 역시 유명한 식당에 들러 그 집의 자랑거리인 청국장 한 그릇을 주문했다. 주인이 그를 알아보며 반가워하더니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자기를 알아봐준 주인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워지자.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고 인물 사진을 한 장 찍어줬다. 카메라 화면에서 자기 얼굴을 확인한 주인이 고마워하며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역시 카메라가 좋으니 사진도 다르네요!” 주인이 정성껏 만들어준 청국장을 맛있게 먹고 일어난 사진작가가 계산을 하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다. “참 맛있습니다! 역시 냄비가 좋으니 청국장 맛이 다르네요!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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