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교회와 멀어진 신학은 무용… 기도의 열정 살아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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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교회와 멀어진 신학은 무용… 기도의 열정 살아나야”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02.1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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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교회에서 한국교회의 길을 묻다(하)

더 이상 유럽을 기독교 국가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오늘날 유럽 교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며 USA투데이가 내린 결론이다. 한때는 교회가 없는 유럽의 풍경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의 현실은 다르다. 교회에 매주 출석하는 이들은 수십명 안팎의 노인들에 불과하고 수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교회는 더 이상 유지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다른 목적으로 팔려 나가는 현실이다.

스코틀랜드 역시 마찬가지. 장로교의 본산지라는 자랑스런 별칭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영광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기독교의 하락세를 둘러싼 여러 분석이 있지만 무엇 하나 명쾌한 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그렇다면 실제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스코틀랜드에서 오랜 기간 현지 교회를 담임한 목회자와 유서 깊은 명문 에딘버러대학의 신학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코틀랜드장로교회 존 맥페기 은퇴목사.
스코틀랜드장로교회 존 맥페기 은퇴목사.

 

기도의 열정 되살려야 부흥

존 맥페기 목사는 존 낙스와 언약도의 후예다. 종교개혁의 결과로 탄생해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교단, 스코틀랜드장로교(Church of Scotland)에 몸을 담고 성도들을 섬겨왔다. 스트란라에서 사역하는 김위식 선교사가 소개한 그를 만나기 위해 택시에 몸을 싣고 에딘버러 외곽으로 향했다. 도시를 벗어날수록 사람과 양떼를 만나는 비율이 역전됐다. 시야의 7할이 녹색인 평화롭고 목가적인 마을 풍경은 한국에서 가져왔던 잡념들마저 잠시나마 잊게 해줬다.

이미 현장 사역을 내려놓은 노년의 목회자는 먼 길을 달려온 동양인들을 인자한 미소로 맞았다. 집 안의 포근한 분위기와 존 목사가 내온 스코틀랜드 전통 차의 따뜻함이 긴장을 녹여줬다. 자리에 앉아 스코틀랜드 교회의 현실과 현지 목회자의 생각을 물었다. 존 맥페기 목사는 스코틀랜드 교회의 교세 감소는 사실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코틀랜드장로교는 교단 차원에서 교회 건물과 사택들을 매각하며 줄여나가는 기획을 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어떤 지역에 있는 4개 교회 중 3개 교회를 정리하고 1개 교회로 통합하는 식이죠. 이유는 당연히 교인들이 너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교세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존 목사는 교세 감소의 이유로 사회 전체의 분위기 변화를 꼽았다. 스코틀랜드는 다른 유럽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이른바 크리스텐덤(Christendom)’ 사회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사회 전체가 기독교 배경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 환경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유럽 사회 자체가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점점 기독교 신앙과 거리를 두는 사회 분위기를 볼 때 어쩌면 교인 수의 감소는 예정된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사회가 기독교 신앙과 멀어진 것에도 이유는 있을 터. 원인은 교회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교인들의 뜨거운 기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예장 백석총회가 스코틀랜드에서 개최한 세계 선교사 대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존 목사는 한국교회의 열정을 보며 느끼는 점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기독교 신앙은 바탕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있습니다.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한 수단이 바로 기도죠. 그런데 뜨거운 기도가 줄어드니 감소세도 명확해질 수밖에요. 한국 선교사들이 스코틀랜드에서 개최한 컨퍼런스에 참여했을 때 한국교회의 운동성과 열정을 느꼈어요.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유럽에선 찾아보기 힘든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라는 문화를 갖고 있어요. 스코틀랜드 교회 역시 다시 부흥할 길은 기도에 있다고 믿습니다.”

감소하는 교세에도 노목회자는 조국 교회를 향한 애정과 기대를 놓지 않았다. 위기보다는 기회를, 절망보다는 그 안에서 솟아나는 희망을 봤다.

분명 위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희망은 있어요. 여러 교회가 합쳐지면서 지역 사회 내의 교인들이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고 그 안에서 공동체 교제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팀 사역은 더 원활해졌고요. 비록 교회 출석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비정형화된 교회인 가정교회가 확산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교회가 다시 기도의 열정으로 무장하고 부흥하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에딘버러대학 뉴칼리지 신학부 제임스 에글린턴 교수.
에딘버러대학 뉴칼리지 신학부 제임스 에글린턴 교수.

 

신학은 교회 현장과 연결돼야

에딘버러대학은 440년 역사에 1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상위 명문 대학으로 손꼽힌다. 그 중에서도 신학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신학적 성취에 반해 에딘버러대학이 자리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교회는 줄어들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 신학의 발전과 교회의 부흥과는 정녕 상관관계가 없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 에딘버러대학 신학부 제임스 에글린턴 교수를 만났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에글린턴 교수 역시 스코틀랜드 교회의 교세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전체적인 교세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스코틀랜드장로교(Church of Scotland)의 교세가 줄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보수적인 몇몇 교단은 성장하는 곳도 있습니다.”

신학자가 분석하는 교세 감소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유교는 더 이상 종교로 여겨지지 않는다. 신앙이라기보단 효() 문화와 존댓말처럼 일종의 생활양식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는 그마저도 희미해지고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는 것이 다반사다.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사정이 비슷하다는 것이 에글린턴 교수의 분석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기독교 문화 속에 오래 살기는 했지만 실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그 정체성은 희미해진 상태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낡은 문화로 여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역사적, 문화적으로 기독교 문화의 감성들은 남아있는데 실제 기독교의 매력이 무엇인지는 잘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이를 단순히 세속화라는 한 단어로 치환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에글린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세속화는 두 종류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는 종교성 자체를 배제한 것이고 두 번째는 다원주의 사회의 흐름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우리 사회의 세속화에 대해 제대로 정의하고 지금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신학교에서 신학교수로 일하면서 조국 교회의 약화를 지켜보는 것도 유쾌한 일은 아닐 터. 조심스레 교회 현장과 동떨어져 지나치게 학문적 성취만을 추구하는 신학이 교회의 위기와 관련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인정하기 어려운 질문일 수 있음에도 그는 겸허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신학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전체 학계의 문제이자 대학교, 교육기관의 문제이기도 하죠. 그것의 일부로서 신학도 분명 풀어야할 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신학은 보다 더 실제 교회 생활, 실제 교회 사역과 연결돼야 합니다. 교회 없는 신학, 교회와 연결되지 않은 신학은 그 의미를 잃고 말 겁니다.”

결국 현장에 답이 있다. 신학도 교회를 향해야 한다. 이미 산전수전 흥망성쇠를 모두 경험한 스코틀랜드 교회의 모습은 짧은 역사의 한국교회가 바라볼 거울이다. 에글린턴 교수는 한국교회를 향한 따뜻하면서도 본질을 관통하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고 사회의 흐름에 휘둘려가기만 하는 교회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복음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사회와 호흡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중요할 때라고 봐요. 사람들이 기독교 문화에서 멀어져가는 지금은 교회가 다가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 알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리는 문이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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