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이름값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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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이름값 하기
  • 김기창 장로
  • 승인 2023.02.0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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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장로
김기창 장로

중학교 때의 일이다. 미술 시간에 숙제로 해 온 내 수채화를 보시고 미술 선생님이 그림이 시원치 않다고 나무라셨다.

“‘김기창’이란 유명한 화가도 있는데, 네 그림은 맨날 왜 그 모냥이냐?”

아주 창피했다. 당시는 남녀공학이었는데 그 많은 여학생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시키시다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 후 미술시간과 그 선생님, 김기창 화백까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 화백이 어떤 분이신가 궁금하여 알아보았다. 그분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극복하고 한국 미술계에서 커다란 족적과 영향을 남긴 거장이셨다. 한때 그분은 우리 한국사회에서 ‘인간 승리’의 전형으로 통했다. 내가 그런 분과 같은 이름이라니….

대학 재학 중이던 1967년 가을, 나는 우리 교회 부흥강사로 오신 L 목사님을 예배시간에 만났다. 그분은 설교 중에 맨 앞에 앉은 나에게 갑자기 이름을 물어 보셨다. 나는 ‘터 기(基)자에, 창성할 창(昌)자’라고 했더니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터가 창성할 것이라…. 이름이 참 좋으니 나중에 꼭 이름값을 하세요.”

그 후 몇 년이 흘러 내가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교수가 되려고 기도하던 중, 그리도 원했던 기독교 재단의 학교에서 교수를 초빙한다는 신문 광보를 보게 되었다. 대학 강의 경험이 있고,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어서 임용에 큰 기대를 갖고 지원서를 냈다. 면접을 보는 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장소에 가 보니 면접위원 세 분 중 그 때 뵈었던 L 목사님이 계셨다. 순간 참 반가웠다. 적이 안심이 되었다. 그 목사님께 내 이름을 물어보셨던 일을 상기시켜 드렸다. 그분은 그동안 어떻게 공부하고,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 왔는지를 자세히 물어 보시고 몇 가지의 질문에 대한 내 답변에 만족을 표하셨다. 그리고 웃으시면서 꼭 이름값을 하라고 다시 말씀하셨다. 면접 결과가 좋아 바라고 기도했던 ‘대학교수’가 되었다. 하나님의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이루어진 일로 믿는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내 이름값은 제대로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자신의 이름값을 100% 완벽하게 하신 분이 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는 ‘그리스도’, 즉 ‘구원할 자, 구세주’라는 칭호를 가진 분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셔서 그 이름값을 톡톡히, 아주 확실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행하셨다.

또, ‘위로의 아들’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바나바도 소개할 만하다. 그는 그 이름의 의미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위로를 해주고, 비전을 제시하며, 주저앉았을 때 일으켜 준 사람이다. 어느 곳에서든지 어려움당하고 소외당한 자들의 편에 선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는 성경 속에 가장 착한 사람하면 ‘바나바’를 떠올린다. 그는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산 사람임에 틀림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이름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존재이다. 그 이름에는 부모의 사랑, 바람과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만큼 이름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의 도덕적 기대, 이정표인 셈이다. 부모는 아이가 그 이름이 가진 뜻처럼 충실하게 잘 살아가길 바랄 것이고, 당사자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고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에 담긴 부모의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이름값을 하고 살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 훌륭한 업적이나 명예로운 생애로 후대까지 이름을 떨치는 사람들도 많지만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채 오명을 남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제각각 주어진 위치에서 제몫을 묵묵히 실천하고, 나눔과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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