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셋째 주 하늘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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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셋째 주 하늘문을 여는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3.01.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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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아름다운 표현 / 야고보서 3:1~11 / 찬송: 288장

우리가 쓰는 말에는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사랑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힘이 되는 말,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말, 용기를 주는 말 등은 아름다운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가 되는 말도 있습니다.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듯이 아픔을 주는 말들도 있습니다.

아주 작은 시골 교회에서 성찬을 신부가 집례를 하고 있었을 때, 어린 한 소년이 성찬 예식을 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실수를 해 성찬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신부가 소년의 뺨을 때리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시는 제단 앞으로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그는 영원히 제단 앞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장성해서 훗날 유고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비웃고, 신앙을 핍박하는 공산주의 지도자 티토입니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무서운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본문은 혀가 얼마나 큰 위력이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많은 허물 가운데 말로 인한 실수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까? 말씀의 거울 앞에서 우리의 허물을 깨닫고 더 성숙한 신앙으로 다듬어지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나의 입술을 주장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역사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화요일 /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아라 / 열왕기상 18:30~40 / 찬송: 412장

갈멜산 꼭대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바알이 참 신인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인지를 가리는 대결이 펼쳐집니다. 바알 신이 거짓 신임이 증명된 후 엘리야는 살아계신 한 분 참신이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전에 가장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고쳐 쌓았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무너져버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신앙이 다시금 회복되어 그래서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엘리야는 허물어져 방치되어 있던 여호와의 제단을 맨 먼저 수축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먼저 무너진 예배의 제단을 다시 고쳐 쌓은 후 한 분 참신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기도했을 그때에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을 삼켰던 것입니다.

 무너진 예배가 온전히 회복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끈끈하게 되자 비로소 하나님께서 오랜 가뭄의 심판을 거두십니다. 이스라엘에 찾아온 삼년 반 동안의 오랜 가뭄의 가장 주된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분 참신이신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예배의 회복은 닫힌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무너진 예배를 다시금 온전히 회복함으로써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은혜의 하늘 문, 축복의 하늘 문이 활짝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온전한 예배의 회복으로 내 삶에 임한 가뭄이 그칠 수 있도록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옵소서.

 

수요일 / 죄악을 벗어던집시다 / 아모스 8:1~14
/ 찬송: 420장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북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8장에서는 네 번째 환상인 여름 과일 한 광주리 환상을 통해 심판을 경고합니다. 특히 본문에서의 여름 과일 한 광주리 환상은 임박한 심판의 때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여름 과일의 때가 임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름 과일과 임박한 심판의 때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여름 과일을 거두는 것은 이스라엘 1년 추수 중 맨 마지막에 있는 일입니다. 또한 여름 과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발음이 유사합니다. 그렇기에 언어유희를 이룹니다. 이러한 장치를 통하여 북이스라엘에 대한 최후 심판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환상을 통해 우리의 삶 또한 그 열매를 맺고 열매를 거두어야 할 시기가 정해져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선한 열매이던 악한 열매이던 우리는 그 열매를 맺으며, 그것을 거둘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열매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선한 열매를 맺은 자는 영생의 심판을, 악한 열매를 맺은 자는 영벌의 심판을 받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죄를 경계하며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 말함을 기억하며 선한 열매 맺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늘 성령 충만하여 악을 분별하고 악에 물드는 것이 아닌 맞서 싸우는 믿음의 군사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목요일 / 구원의 길 열어주는 진정한 회개 / 마가복음 1:14~15 / 찬송: 325장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회개라는 말은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의 중요성을 안다면 부담이 아니라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회개를 알면 구원의 복음이 말하는 중심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본문 15절에서 예수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핵심적 단어는 하나님 나라와 복음, 그리고 회개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알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회개할 내용인 죄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성경적인  죄의 근원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중심에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세우고 옛 본성을 따라 사는 것이 죄입니다. 

두 번째로 회개는 죄를 슬퍼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세례 요한의 외침을 따르려면 회개를 통하여 죄를 슬퍼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복음은 죄를 슬퍼하게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만난 사람은 죄를 멀리합니다.

마지막으로 회개는 내 방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받아 들이는 자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자기 방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식을 취한 백성은 모두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회개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금요일 / 주님과 같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 마태복음 5:14~15 / 찬송: 502장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스스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스스로 밝습니다. 빛은 어둠을 물리치고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비록 완전한 빛은 아닐지라도 우리를 빛이라고 이름 지어주신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두움에 동화되어서도 안 되고 어두움과 타협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에 속하지 말고 오히려 이 세상을 굳건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도피하지 말고 담대하게 그리스도인의 온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빛이 된 우리의 사명입니다.

빛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부패한 세상에서, 어둠의 세상에서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깊은 산 속 수도원에 들어가서 자신의 욕심을 위한 기도나 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세상이 살벌할수록 이 시대를 책임지지 못한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자기 몸을 등불처럼 비추어서 세상을 밝히는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큰 불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나 같은 무능한 것이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나약한 마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이 세상을 밝게 비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우리에게 주신 ‘세상의 빛’이라는 영광스런 이름의 값을 다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토요일 / 약속하신 계약은 오직 예수님 / 창세기 9:9 / 찬송: 546장

구약의 죄인은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제사는 하늘의 하나님께 올라갔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신령과 진리로 드릴 때 하늘의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에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의 후손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언약은 ‘베리트’입니다. 그것은 언약, 계약, 협정으로 표현되며 십자가의 예수님 안에서 첫 번째로 사역하신다는 상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하신 약속입니다.

첫 번째 언약은 예수님입니다. 구원을 약속한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알파벳 ‘타브’는 십자가를 상징하고 끝, 종결을 의미합니다. 사역의 마침을 의미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언약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언약을 종결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계약은 예수님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앞장 세워 나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와 계약하신 것을 인정하십니다. 주님을 앞장 세우지 않는 모든 계약은 무효가 됩니다.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속죄를 끝내신 분은 주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언약을 믿음으로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제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하신 계약은 오직 예수님을 믿으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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