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성탄의 희망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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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성탄의 희망은 어디에?
  • 강석찬 목사
  • 승인 2022.12.2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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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
강석찬 목사

성탄절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성탄 같지 않은 연말 풍경이다. 2022년 성탄절의 색(色)은 어떤 색일까? 아무래도 ‘우울한(blue) 잿빛(grey)’ 크리스마스가 될 듯하다. 대학교수들이 한 해를 돌아보는 사자성어를 ‘과이불개’(過而不改)로 정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교회의 말로 바꾼다면, ‘회개’(悔改) 없는 신앙과 교회라고 할 수 있겠다. 2위로는 ‘욕개미창’(欲蓋彌彰)이었는데, ‘덮으려 하면 더 드러나게 된다’를 의미한다. 2022년의 세평(世評)으로 보면,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타락하였는지를 깨닫게 한다. 언제부터인지 교회의 절기가 잊히고 있다. 부활절은 석탄일의 연등 행사로 지워졌고, 추수감사절도 핼러윈 축제가 슬그머니 밀어내고 있다. 성탄절도 점차 거리에서 새해맞이로 내몰리는 추세이다. 성탄절 풍경도 예수 탄생 축하보다는 산타의 선물 보따리 상업주의가 더 큰 관심이다. 성탄절은 교회의 가장 큰 축제였다는 주장은 옛날이야기가 되었고, 위축된 교회학교 현실로 손자와 손녀들의 재롱잔치나, 청소년 청년의 밤샘 파티나 새벽송의 추억도 소멸되고 있다. 동시에 성탄의 희망도 슬그머니 보이지 않게 된 것처럼 보인다. 잃어버린 성탄의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김광섭(1905~1977) 시인은 ‘저녁에’라는 시를 썼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 되어/ 다시 만나랴” 이 시를 1960년대 말 뉴욕에 살고 있던 시인의 오랜 친구였던 화가 김환기(1913~1974)가 읽었다. 당시 화가는 가난과 고독에 지쳐있었다. 화가는 시인의 시를 통해 자신이 버림받은 존재라는 것을 이겨내고 그립고 다정한 얼굴들을 생각하며 점과 선이 무수히 반복되고 찍혀지는 점묘화를 그렸다. (최인호(1945~2013)‘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에서 인용) 화가는 1970년 1월 뉴욕에서 쓴 일기책에 긴 투병 끝에 기적적으로 소생한 시인의 시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라 썼다.

루마니아 중소도시를 방문한 여행자의 글에서 따 온 이야기이다. 한 교회의 예배당 뒷벽에 장애인 예수님을 그려놓은 유화가 있었다. 팔다리가 없을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이었다. 당혹감으로 방문자가 “왜 하필 장애인 예수인가요?” 묻자, “그래요.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말씀도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인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그분의 눈이 되고, 입이 되고, 손과 발이 되어 약자의 신음을 듣고, 지친 이웃을 돌보고, 따스함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담임목사가 답했다고 한다. 시론자는 글을 읽으며 의자에 앉은 장애인 예수님을 그렸다. 그렇다. 김환기 화가의 점묘화의 점 하나가 되어보는 것, 누군가의 차가워진 마음을 따사하게 품는 한 사람이 되어보자. 우리가 잃어버린 성탄의 희망을 되살리는 한 사람이 되자. 우리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세상에 희망으로 만드는 한 사람이 되자.

예따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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