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생명이 지배하는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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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생명이 지배하는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 곽인섭 목사(서울백석대학교회담임, 백석대학교대학원 교목실장)
  • 승인 2022.12.06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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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적생명운동① - 영적 생명이 소중합니다

구세군을 만든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1912)라는 사람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자신이 구원받았던 그 날을 잊고 싶지 않아서 자기가 홈리스였을 때 입고 다니던 다 떨어진 양복을 걸어놓고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의 감격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믿어 받은 구원으로 인하여 내 안에 생긴 영적 생명을 지키고,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한 수고가 필요합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의 네 번째 주제는 ‘영적생명운동’입니다. ‘예수생명 예수생활’…이것이 개혁주의생명신학의 핵심인데, 영적생명운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내 안에 생겨난 영적 생명을 유지시키고, 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며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을 회복시키는 ‘영적생명’ 운동이다.”

먼저 영적 생명이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3~54)”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너희’는 살아 있습니다. 만약에 “지금 너희가 칼로 목 베임을 당하면 생명이 없다, 지금 당장 숨이 끊어지면 생명이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육체의 생명’을 말씀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에게 생명이 없다고 하십니다. 또한, 인자의 피,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피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호흡이 당장 멈추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육적인 생명과 전혀 다른 종류의 생명, 영적인 생명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서는 새 생명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영적 생명’은 육적생명과 다르기 때문에 ‘새 생명’이라고 합니다. ‘육적 생명’은 세월이 갈수록 꺼져가고, 죽어가지만, ‘영적 생명’은 죽지 않습니다. 육신이 죽어도 ‘영적 생명’은 계속 돌아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혼과 교회를 향한 희망을 가집니다. 생명의 말씀이 들려지기만 한다면,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주신 ‘영적생명’은 지금도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성령께서 터치하시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간혹 신앙생활을 몇 년간, 또는 몇 십년 간 안 하시다가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신앙생활을 안 하신 게 아닙니다. 예전에, 청년 시절에, 또는 어릴 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한참을 쉬시다가, 교회에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또 교회는 잘 다니시는데, 안과 밖의 어려움 때문에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깊은 영적인 침체에 빠져서, 1년 정도 기도를 못하신 분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마음이 너무 차가워져서 기도도 못하겠고, 찬송도 못 부르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생명만 있다면, 그 영혼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주어지는 새 생명의 씨앗만 있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약해져 있어도, 아무리 오랫동안 쉬었어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다시 기도할 수 있고, 다시 찬송할 수 있고, 다시 일어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육적인 생명은 세월이 갈수록 약해지고, 추해지지만, 새 생명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강해집니다(고후 4:16). ‘겉사람’, 우리 육체는 아무리 가꾸고, 관리해도 낡아지고, 못나지고, 약해집니다. 그러나 ‘속사람’, 영적 생명이 지배하는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쇠하지 않습니다. 약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은 점점 강해집니다.


영국의 유명한 기독교 사상가인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원수’는 예수님이고, ‘환자’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다른 젊은 유혹자들처럼 깜짝 놀랄 만한 죄악을 보고하고 싶어 안달 난 꼴이 보이는구나. 하지만 명심하거라. 중요한 것은 네가 환자를 원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떼어놓느냐 하는 것 한 가지뿐이다.”

주님과 가까이 하십시오. 이것이 참된 복입니다. 거기에 영적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주님과 가까이함으로, 영적 생명이 풍성한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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