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창문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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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창문을 열고
  • 김한호
  • 승인 2022.11.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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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김한호 목사.
김한호 목사.

지난 주일 예배 후 성도 한 분이 인사하고 나가면서 자신의 글이 담긴 책 한 권을 건네주셨습니다. ‘마음에 창이 열리면’이란 글인데 가끔 자신의 마음의 창을 열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음의 창을 여는 방법으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던지, 글을 쓰던지, 그림을 그리던지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분의 글을 읽고 난 후 머릿속에 ‘마음의 창’이라는 단어를 자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볼 때 마음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됩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창을 통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에 집중하기에 똑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창에 갇혀 불통의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나의 마음의 창을 활짝 연다는 것은 나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상대의 시선에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창을 열어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노아의 홍수 사건을 묵상하면서 ‘창문을 열고’라는 단어가 유난히 눈에 크게 들어왔습니다. 물론 창세기 노아 홍수 사건의 ‘방주의 창’을 연다하는 것과 제가 요즘 생각한 “마음의 창”을 연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는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아의 창은 무엇인가요? 축구장만한 규모의 방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의 높은 천장 바로 아래에 창을 만들라 하셨습니다. 손이 닿을 수 있는 창문이 아니라 천장에 가까이 창을 만듭니다. 방주의 창문을 높은 곳에 만들라 하신 것은 세상을 뒤덮고 있는 흉흉한 물결을 보지 말고 창문을 통하여 오직 하늘만, 오직 하나님만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비가 멈춘 후 방주가 아라랏 산에 멈추었을 때에 노아는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보냅니다. 그리고 비둘기를 보냅니다. 언제 돌아올지도 다시 안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창문을 열어 새를 계속하여 보냅니다. 그때에 비둘기가 감람나무의 새 잎사귀를 가져왔습니다.

비둘기가 물고 온 감람나무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감람나무가 있다면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인 ‘번영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국제연합(UN)의 깃발을 보면 바로 이 감람나무 잎사귀를 그려 넣고 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끝이 나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번영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감람나무 새 잎사귀는 깨어진 인간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막혔던 관계도 열리는 회복의 증거였습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 머물렀던 1년여의 시간 동안 오직 창문을 통해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다리며 지냈습니다. 심판이 끝난 후 하나님께서는 창문을 열어 회복되어지는 세상을 보게 하시고 노아를 위해 준비하신 새 땅을 밟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모두 방주 밖으로 나오거라 이제 이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며 살아라”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홍수로 인하여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심판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그 모든 과정을 몸소 체험했기에 하나님의 위엄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주 밖으로 나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새 땅을 밟으며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노아에게 있어서 창문을 연다는 것은 힘겨운 도전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문을 열고 나올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기회가 있을 때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놀라운 축복의 감람나무 잎이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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