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스커트 입던 이란 여성들, 혁명 때는 ‘베일 쓰고’ 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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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스커트 입던 이란 여성들, 혁명 때는 ‘베일 쓰고’ 거리로
  • 이정순 박사
  • 승인 2022.10.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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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 최근 이란 시위로 본 무슬림 여성과 베일(중)

1979년 이슬람 혁명 전 이란은 대표적 친미국가
“이슬람 정신 살리겠다” 반 서구 시위로 베일 써
현 시위, 오랜 경제위기 시달린 반정부 정서 담겨
이란 여성들은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비교적 여성인권이 높은 편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는 서구의 영향으로 베일착용을 금지하고 미니스커트를 입기도 했다. 베일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이란 여성들은 전신을 가리는 차도르부터 화려한 스카프까지 자유롭게 자신의 취향껏 베일을 선택한다.
이란 여성들은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비교적 여성인권이 높은 편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는 서구의 영향으로 베일착용을 금지하고 미니스커트를 입기도 했다. 베일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이란 여성들은 전신을 가리는 차도르부터 화려한 스카프까지 자유롭게 자신의 취향껏 베일을 선택한다.

이슬람 혁명으로 군주제 폐지

이란은 약 1400년 간 군주제를 유지하였으나 1979년에 이슬람 혁명으로 군주제를 폐지하였다. 현재 공식 명칭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이며 시아파 종주국 이다. 
코사크 부대 사령관이었던 레자 칸(Reza Khan)은 팔레비 왕조(1925~1979)를 열어, 1935년 3월 21일 페르시아란 이름을 폐기하고 ‘이란(아리아인의 땅)’으로 국명을 변경하였다. 레자 샤는 이슬람의 종교적, 전근대적 사고방식 대신 세속적, 서구적, 합리적, 근대적 국민 의식을 상승시키려 했다. 그는 1936년에 여성들의 베일(차도르) 착용을 금지하고, 개혁을 밀어 붙이기 위해 반대 세력과 언론을 강도 높게 탄압했다. 팔레비 왕가와 이슬람 성직자들의 대립은 이슬람 혁명을 촉발한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1979년 이슬람 혁명이 발생하기 전에 이란은 원래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였다. 이란의 통치 형태는 신정일치와 중앙집권적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이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군사 분야에까지 모두 포함됐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신정일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동에서 이란은 유일하게 민주적 절차대로 정권교체가 되었다. 이슬람 보수파 호메이니가 1979년 2월 11일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헌법은 전문 제14장 제175조로 구성되어 있다. 헌법 전문에는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이슬람 원리에 토대를 둔 이란 국민의 문화, 사회, 정치 및 경제의 기초가 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슬람 혁명 이후부터 이란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 이란의 권력은 둘로 나누어진 독특한 통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국가의·정치·종교 최고 권력자인 최고지도자가 군부를 통제하며 나라를 통치한다. 이란은 대통령이 있으나 실제로는 종교지도자가 헌법수호위원회를 통해 입법·사법·행정부를 통제하는 신정 체제이므로 이중성을 지닌 나라이다. 이란의 정치체제는 이슬람 신정공화제로, 이슬람법에 의해 통치가 이루어지나 선거를 통해 대통령도 선출하는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최고지도자는 국군통수권을 비롯하여 대통령의 임면권, 외교권 등 중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3)는 호메이니가 1989년 6월 4일 사망한 이후 종신직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자리를 33년 째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은 선거를 치르지만 사실상 종교 우위의 독재 국가에 가깝다. 

 

시위 실제 배경에는 ‘경제 문제’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이란 정부는 모든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베일과 헐렁한 옷으로 온몸을 가리도록 하는 복장 규정을 의무화했다. 도덕경찰의 공식 명칭은 ‘도덕 경찰(가쉬테 에르셔드)’이며, 주요 임무는 여성의 복장 단속이며 적절한 의복을 착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도덕경찰은 여성의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보이는지, 바지와 겉옷이 너무 짧거나 꽉 끼는지, 화장이 너무 짙은지 검사할 수 있다.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은 식당 출입이 금지되며 만약 이를 위반하면 당사자는 물론 식당 주인도 이를 방조했다는 이유로 영업정지 등 문책을 받는다.

현재 이란 전국 시위와 성격에서 그간 이란 내에서 벌어졌던 시위와 양상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미니의 죽음에서 시작된 시위는 자유와 인권에 대한 요구로 바뀌어져, 이슬람주의를 강조해 온 이란 정부를 반대하는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베일을 벗은 여성들이 시위대 한 가운데서 춤을 추며 젊은 층은 매우 대담한 행동을 표출하고 있다. 

이 시위에는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남성과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고 기성세대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이는 이란의 내부적 문제들이 동시에 터지면서 분출된 탓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발생이후 지난 40년 동안 수십 년간의 높은 인플레이션, 제로에 가까운 경제 성장, 높은 실업률, 후진적 행정 시스템 등 수많은 요인들로 이란의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고 있다. 국민 약 60%가 35세 이하인 이란 청년들의 30%가 실업자이며 이들은 인터넷 등으로 다른 나라의 청년들의 자유를 간접 경험을 하고 있다. 이란 국민들은 오랜 경제적 위기로 피로감 높아지면서 경제적 위기의 책임도 함께 묻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시위는 2021년 대선에서 당선된 강경 보수파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성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여성들의 베일 착용 규정을 강화하는 등 보수적 색채를 더 강하도록 했다. 도덕 경찰이 강경하게 단속하는 이유는 ‘안면인식 기술로 베일 미착용 여성 식별 계획’을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라이시 대통령은 9월 22일 미국에서 CNN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여기자에게 머리 스카프 착용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기도 했다.

 

베일, 혁명의 상징이기도

이란은 여성의 인권이 억제된 나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1960~1970년대 이란 테헤란은 서구적이며 중동의 파리(Paris)하고 불릴 정도로 가장 큰 나이트클럽이 있었다. 길거리에는 선글라스를 쓴 여성들이 반팔 블라우스나 민소매 원피스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여성들은 차도르(chador, 아랍어 히잡 hijab)를 착용하기도 했지만, 의무가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이었다.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에서 베일은 공공장소를 들어갈 때 오히려 벗어야 할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1977년 봄과 1979년 2월 사이에 전개된 이슬람 혁명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당시 혁명에는 수많은 여성이 참가하였다. 혁명에 참여한 여성들은 팔레비 왕조에 반대하기 위해 베일을 착용했다. 당시 여성의 베일 착용은 여성의 인권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팔레비 왕조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혁명이후 호메이니 정부의 반서구 가치는 ‘이슬람 정신을 되살리겠다’며 여성이 외출할 때 의무적으로 베일 착용을 강요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여성들은 공식적으로 집 밖으로 외출 시에는 베일을 착용해야만 하며 외국인이라도 이를 지켜야 한다. 여성들이 베일을 착용하지 않고 밖에 나서면 경찰에 체포될 수 있으며, 2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25달러 벌금을 내어야 한다. 보수적인 여성들은 전신을 보이지 않게 감싸고 다니며 차도르 통해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한다.

그러나 최근 도시에서는 베일로 머리 전체를 가리거나, 얼굴을 가리는 여성은 많지 않다. 젊은 여성들이 베일의의 일종인 ‘루싸리(rousari, 페르시아어로 ‘머리에 쓰는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목과 머리의 일부를 가리며 팔과 다리를 노출하지 않는 긴 팔의 상의와 청바지를 즐겨 입으며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고 눈 화장을 하며 미국 팝 음악을 좋아한다. 여성이 운전할 수 있으며, 교육이나 사회활동에도 제한이 거의 없다. 여성의 참정권도 일부 인정되며, 젊은 여성의 고등교육이 높으므로 인해 문화적, 경제적 활동과 정치적 참여를 증가하여 민주주의의 구축능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가족 이외의 남성과 어울리는 것도 불법이며 남녀공학은 금지되어 있다. 식당과 버스에서는 남녀 좌석이 분리돼 있다. 여성은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맨 앞과 맨 뒤 칸만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이슬람국가의 베일 착용

현재 이슬람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베일은 국가, 종교적 성향, 집안 전통, 계층, 취향에 따라 히잡, 차도르, 니캅, 부르카 등 그 명칭과 모양이 다르다. 베일은 크게 두 종류로 전신 가리개용과 베일용 스카프로 나뉘며, 색상과 길이는 사회 환경과 기후 등에 따라 다양하다.

베일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의미는 나라마다 다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튀르키예, 아프가니스탄 등을 간략하게 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심장이며 발생지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법에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경찰과 사법당국은 모든 계층의 여성은 강제적으로 베일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베일 착용은 여성의 이동 자유는 물론 사회 활동의 많은 영역을 확보해 주고 있다. 튀르키에(터키) 여성들의 옷에서 가장 세밀하고 화려한 부분은 베일이었다. 오스만 시기에, 여성들의 베일은 그들의 의복의 여러 부분에서처럼, 큰 도시와 시골 지역에서 차이를 보였다. 오스만 제국(1299~1922) 시대에 베일은 상류층 무슬림의 특권으로 받아들여졌고, 베일을 착용하는 것이 점차적으로 중요한 무슬림의 관습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튀르키예 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은 1935년 베일을 전면 금지했다. 튀르키예는 정당에 따라서 여성들의 베일 착용을 격려하거나 제한한다. 

아프가니스탄은 20세기 초의 이란처럼 서구지향적인 왕국이었다. 1970년대 카불 시내에서 찍힌 미니스커트 입은 젊은 여성들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2022년 현재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사진 대다수는 부르카를 뒤집어쓴 모습이다. 1973년 아프가니스탄은 공화국이 된 뒤부터, 1979년 12월부터 1990년 전후의 소련군 철수 기간 동안 사회주의를 표방하므로 이슬람 율법에 따른 여성의 베일 착용의 강압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2021년 8월 20여 년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던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갑작스럽게 수도 카불에 탈레반 복귀하였다. 2022년 5월 7일 집권 세력인 탈레반은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했다. 샤리아에 따라 여성은 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려야 하며 여성 공무원은 얼굴을 가리지 않을 경우 해고될 수 있다고 명령했다.

베일 착용의 관점은 이슬람 국가 안에서도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하다. 서구에서는 베일을 여성의 인권과 억압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이슬람권 안에서는 베일을 원하는 여성들도 많다. 때로는 베일 착용이 거꾸로 저항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슬람 국가의 정치적 상황은 항상 유동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서구적 혹은 페미니스트 관점만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다. 서구적 시각과 페미니스트 관점은 모든 무슬림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며 폐쇄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정순 박사(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중동연구원)
이정순 박사(아신대학교 중동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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