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게 하라, 그리하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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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게 하라, 그리하면 알게 될 것이다!”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2.10.13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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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19

수년 전 서울대생들의 학습 방법에 대한 조사결과가 발표 된 적이 있다. 필기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학점이 높다는 결과였다. 4.3점 만점에 4.0을 받은 학생 중 필기에 올인한다는 학생은 87%나 됐다. 이러한 수업에서는 입 다물고 강의 내용 필기 잘해서 암기 잘해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  

미국 경영연구회가 경영인(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역량 4가지(4C)를 발표한 적이 있다. 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 Creativity(창의성), Communication(소통), Collaboration(협력)이 그것이다. 비판적 사고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다각적으로 따져보는 것이다. 그래야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고, 창의성을 발휘해야 그걸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도움을 주고 받는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자는 배우고(學) 물음(問)으로써 진정한 앎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학문(學問)’에서 ‘學’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이지만, ‘問’은 그 지식을 주체적으로 소화하여 진정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비판적 관점에서 의문을 갖고 반문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질문의 상대는 1차적으로는 자신이고, 2차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런 점에서 4C 중 비판적 사고는 매우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듣기만 하는 일방적인 대화는 효과도 적고, 오류(Error)가 나기 쉽다. 교수자와 학습자 간에, 특히 한 사람의 교수자와 다수의 학습자 간의 일방적인 ‘공장식 수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 학습은 교수자와 학습자, 학습자와 동료 학습자 사이에서 질문과 답을 통해 이뤄진다. 비대면 수업이 대면 수업에 비해 효과가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호작용은 비판적 사고(의문)에서 시작된다. 교수자와 학습자가 서로 묻고 답하기, 학습자와 학습자가 서로 묻고 답하기가 살아나야 학습에 효과가 생긴다. 아울러 교수자와 학습자가 서로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도 이뤄진다. 질문이 있는 수업 만들기-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다.

예수님이 지금 오신다면 인터넷과 유뷰브, SNS를 통해 우리와 소통하실 것이고 우리는 많은 걸 물어볼 것이다. 우리는 그걸 생생히 녹화하고 파파고로 번역해서 땅끝까지 전할 것이다. 소통의 기술은 여러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일방성에서 쌍방성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일방성에 익숙한 세대와 쌍방성에 익숙한 세대 간에 여러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특히 그런 것 같다.

 

예배와 교육에 묻고 답하는 상호작용을 살리자!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예배와 교육이다. 개신교의 실질적인 신앙교육은 설교가 주된 기능을 한다. 물론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개신교의 예배와 교육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해보자. 극장에서 영화 보듯 소수가 진행하는 순서를 구경하고, 설교자가 일방적으로 전하는 걸 피드백도 못한채 듣는다. 그 흔하던 부흥회가 자취를 감춘 이유가 무엇일까? 상호작용 없는 일방성 때문은 아닐까? 하나님과 상호작용이 예배라면 설교자가 회중과, 회중이 다른 회중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나는 목회자들이 자신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고, 교인들은 가르쳐야 할 대상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신앙교육은 목회자와 교인, 교인과 교인이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아는 걸을 가르쳐주고 배우는 과정이다. 과연 이 시대 교회의 신앙교육은 효과가 있는가? 매우 회의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뭔가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효과가 없다면 그건 학습자보다 교수자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가르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질문을 주고받지 않으려면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설교자들은 교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보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걸 외치려는 경향이 있다. 오늘 설교 내용 중 궁금한 것, 더 알고 싶은 것을 메모로 받아 그 다음 주에 답변을 해주면 어떨까? 또는 소그룹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설교 주제 등 신앙생활에 관해 교우들끼리 격의 없이 서로 묻고 답하게 하면 어떨까? 그래야 길이 보이고 삶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이어령 선생은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고 했다. 교수자의 임무는 자신이 아는 걸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학습자가 그걸 제대로 알게 하는 데 있다. 목회자는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교인 스스로 자신의 신앙생활에 의문을 갖게 하면 좋겠다. 목회자도 교인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먼저 물으시고, 질문에 일일이 답하셨다.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셨다.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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