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금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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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금야금”
  • 강석찬 목사
  • 승인 2022.10.1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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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강석찬 목사
강석찬 목사

가을이다. 생밤 한 톨 맛보려고, 알밤 한 알 껍데기를 깠다가,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통통하게 살진 밤벌레를 만났다. 눈살 찌푸리며 밤벌레를 꾹 눌러 처리하고, 밤벌레가 먹고 남긴 배설물로 채워진 밤은 쓰레기통을 향했다.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야금야금’ 조금씩 파먹어 들어가 몸짓을 불린 밤벌레를 보면서, 오늘 우리 시대의 여러 현상을 떠올렸다.

이솝우화의 ‘아라비아 상인과 낙타’를 보면, 사막을 건너다니며 장사하는 아라비아 사람이, 추운 밤 천막 안에서 잠이 들려는데, 낙타가 머리를 넣으며 “주인님, 너무 추운데, 머리만 천막 안에 넣게 해 주셔요”한다. 너그러운 마음의 주인이 허락했다. 조금 후, 낙타는 목까지, 또 조금 후, 앞다리를, 다시 조금 후, 몸의 절반을 천막 안에 넣기를 요구하는데, 착한 상인은 구석에 웅크리면서까지 허락했다. ‘야금야금’ 파고든 낙타는 몸 전체를 천막 안에 들이밀었고, 결국 주인은 내쫓겨 추운 밤을 지내게 되었다는 우화(寓話)다.

1960~70년대 미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탈근대주의)이 시작되었다. 모더니즘에 반(反)근대주의의 이성 중심주의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하는 사상적 경향을 총칭하는 말이다. 
문학과 건축 등 예술 분야에서 만들어진 말인데, 말 그대로 모더니즘 이후(post), 모더니즘과 상반되는 특징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쉽게 표현하면, 지금까지 지켜왔던 것에 대하여 “꼭 그래야 돼?” 묻고, “다르면 안 돼?” 하는 것이다. 반(反)문화를 추구한다. 미인(美人)선발대회를 반대 하면서, 미인(美人)을 팔등신(八等身) 여성으로 규정하는 것에 “뚱뚱하면 미인이 안 돼?” 묻는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의 기준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선과 악, 남과 여, 신과 인간 등의 관계가 허물어지고, 선(善), 덕(德), 미(美), 성(性) 등의 기준이 달라졌다. 탈(脫) 구조, 종교, 윤리 현상이 나타났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신의 죽음에 대한 추도식’이라 부르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오던 윤리·도덕의 벽이 무너졌다. 오랜 사회의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사람의 ‘자유’가 무엇보다도 중요해졌다. 문제는 어느새 세상은 이상한 풍조가 ‘야금야금’ 가을 단풍 들듯 물들고 있다는 점이다.

하비 콕스(Harvey Cox)는 교회의 세속화, 자본주의화를 경고하면서 “뱀이 하는 대로 그냥 두지 말라”고 했다. 뱀은 단순히 악이라고 부르는 사회구조의 부조리에서 발생하는 범죄라기보다는, 창조주의 질서를 거부하는 행위, 인간의 교만에서 비롯된 하나님에 대한 거부라고 했다. 과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이성이라는 미명에 광범위하게 생활 속에 내재 된 뱀의 유혹인 경제, 시장, 자본주의 사상 조류를 우상화하는 것을 거부하라고 한다. 콕스는 죄의 본질을 뱀이 ‘야금야금’ 활동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에 있다고 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렇다고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유, 스스로 자유를 행하지 않는 자유를 주셨다. 

그래서 잘못된 자유 보장으로 빚어진 현실에 대하여, 곧 마약, 이혼, 폭력, 동성애, 음주 등을 부추기는 광고, 드라마, 게임, 미디어, 뉴스, 문학, 그림 등으로 ‘야금야금’ 미화(美化)하는 세상 풍조에 대해 교회는 단호하게 “아니!”를 소리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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