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보고 오늘을 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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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보고 오늘을 사는 지혜
  • 임석순 목사
  • 승인 2022.09.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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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순 목사 / 한국중앙교회 담임
임석순 목사
임석순 목사 / 한국중앙교회 담임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온 종일 놀다가 헤어질 때 메뚜기가 말했습니다. ‘내일 또 만나’ 그러나 하루살이는 ‘내일이 뭐지?’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메뚜기는 하루살이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고 혼자서 외롭게 놀고 있을 때 개구리가 와서 놀아주었습니다. 헤어질 때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말했습니다. ‘내년에 또 만나…’ 그러나 메뚜기는 ‘내년이 뭐지?’라고 했습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우화입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뿐이겠습니까? 사람들 중에도 내일을 모르기에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떤 이는 인생살이 80년, 혹은 100년 동안 앞을 내다보기는 하지만 그 역시 죽음이 끝이라 생각하고 영원한 내일은 모르니 불쌍한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내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영원한 내일을 바라보고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가니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은 내일을 보지 못하고 내일을 준비하지 못하는 점입니다. 어릴수록 내일보다는 지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만약 어른이라 해도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거 먹어야 하고 지금 당장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 그는 아직 철들지 못한 어린아이입니다. 교회도 영원한 내일을 바라보면서 내일이 없는 세상을 불쌍히 여기며 세상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교회가 철든 교회, 어른이 된 교회입니다.

성경에서도 지혜로운 청지기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고 자칫 잘못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인데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청지기가 자신을 해고하려는 주인의 생각을 알고서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자기 마음대로 그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내용입니다. 그 청지기는 해고당했을 때 빚을 탕감 받은 이들이 자신을 받아들여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의 반응은 뜻밖입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그리고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며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며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눅 16장 8절~12절)라는 말씀은 ‘불의한 사람처럼 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내일을 바라보고 내일을 준비하면서 살면 불의해도 지혜롭다고 하는데 너희들은 영원한 내일을 소유한 빛의 자녀이다. 그러니 영원한 내일을 바라보면서 내일을 준비하며 오늘을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그것이 바로 충성되게 사는 삶이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내일을 보는 사람이라면 오늘을 충성되게 살아야 하는데 그리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세상이며, 세상의 재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과 매일 매순간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내일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오늘 나의 상황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보다 더 형편없이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이 싸움은 만만치 않습니다. 교회는 내일을 보고 오늘을 사는 지혜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길 하나님도 세상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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