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도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함께 사는 것이 미래를 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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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도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함께 사는 것이 미래를 품는 것”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2.09.06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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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한국교회, 미래를 품다(29) 농인들을 위한 학교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2006년 공부방으로 시작해 2017년 대안학교로 탈바꿈
수어만 쓰는 국내 유일 농인 유아청소년 돌봄·교육기관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소보사'는 지난 2006년 농인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으로 시작해 2017년 대안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이곳에서는 10명의 학생들이 옹기종기 함께 생활하며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있다.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소보사'는 지난 2006년 농인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으로 시작해 2017년 대안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이곳에서는 10명의 학생들이 옹기종기 함께 생활하며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은 어디로 들어야 할까? 귀일까? 그렇다면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걸까?

2006년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을 설립하고 청각장애가 있는 청년과 청소년들의 ‘농 정체성’ 형성 및 기초학습 능력 향상을 위해 힘써온 김주희 대표의 생각은 좀 다르다. 하나님의 음성을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육성’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깨는 것부터가 농인 청소년을 품는 시작이라는 것. 김 대표는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 가까이 보기 위해서는 교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인들이 교회에서만이라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도록 변화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지난 1일 강북구 삼양로에 자리한 소보사를 찾았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서울시 강북구 삼양로에 자리한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소보사)은 전체 학생이 10명인 작은 대안학교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학생들은 전원 청각장애인이다. 유아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지난 1일 취재를 위해 소보사를 찾았다. 학생들이 방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교사들도 대부분 청각 장애인인 터라, 수업 중인데도 소보사 안에서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차 소리, 새 소리 등 평상시엔 귀 기울여 들어야만 인식할 수 있는 주변 소음이 명료하게 들렸다. 낯선 경험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들도 생경했다. 하늘에 구름이 떠 있는데 손가락 모양이다. 그 아래 파도도 손가락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김 대표에게 물으니 ‘구름’을 뜻하는 수화와 ‘파도’를 뜻하는 수화란다. 설명을 듣는데, 새삼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명제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수화로 빛과 궁창, 물고기와 짐승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상상했다. 소리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벗어나자 성경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음성’, ‘말씀’, ‘들음’ 등의 문구 역시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하죠? 또 주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자란다고도 하고요. 그러면 듣지 못하는 농인들은 믿음이 자랄 기회가 없는 걸까요? 실제로 중세 때는 듣는 것을 강조하면서 농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제가 2006년 소보사를 설립할 때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어요. ‘과연 농인들도 하나님의 형상인가’ 하는 질문이었죠. 농인들도 결함 없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는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려는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일 테니까요. 제가 얻은 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을 뜻함)처럼’ 듣고 ‘청인처럼’ 말하는 분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주로 치면 ‘소리’라는 것은 공기와 중력이 있는 곳에만 존재합니다. 공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죠.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주에서는 말씀하시지 못하는 분인가요? 육성으로만 말씀하시고 귀로만 듣게 하시는 분인가요? 하나님의 듣고 말씀하심은 육체를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 농인들도 말하고 듣습니다. 그것이 청인들의 기준과 다를 뿐이죠. 장애를 대할 때 ‘결함’ 보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장애인을 품는 시작이 아닐까요.”

 

소보사 입구에 걸려있는 그림이 인상적이다. '구름'과 '파도'를 뜻하는 수화가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소보사 입구에 걸려있는 그림이 인상적이다. '구름'과 '파도'를 뜻하는 수화가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공부

25년 전 고등학생 시절 수어를 배운 김 대표는 일찌감치 농인들을 위한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2006년 소보사를 세울 때만 해도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포커스를 맞췄지만, 그 형태가 ‘학교’가 될 줄은 몰랐다. 농인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조차 수어를 쓰는 아이들을 위한 커리큘럼이 없고 구화(입으로 하는 말)를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실이 김 대표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수어만 사용하는 공부방을 열었다.

“수어를 쓰는 아이들은 공부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공부하지 못한다는 말은 즉 생각할 힘을 기를 방법이 없다는 뜻이죠. 그러다 보면 ‘남들이 말하는 나’를 ‘나’로 자각하게 됩니다. ‘난 말도 못 하고 듣지 못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고 자포자기하게 되죠. 그런 아이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너도 이미 말하고 듣고 있지만, 그 방법이 다를 뿐임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청인과 농인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는 것을 알려주려면 이걸 받아들일 만큼의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잖아요. 자연스럽게 공부방이 시작됐죠.”

김 대표는 또 “수어만으로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어떻게든 청각장애를 치료하고 훈련 시켜서 ‘비장애인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세상에서 수어를 하는 사람이 수어로 놀고 성장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소보사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래서 공부방 운영을 접고 2017년 대안학교를 설립했다. 방과 후에만 만나서는 삶으로 연결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소보사 공부방 출신 청년들이 교사로 나섰다. 이들은 자신과 똑같은 농 아동·청소년에게 국·영·수뿐 아니라 농인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 안에서 아이들은 좋은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갈등하고 치졸하게 다투는 모습까지 다 목격하게 되죠. 선생님들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육아하는 과정까지 다 지켜봅니다. 농인 아이들은 부모가 청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내가 어떤 어른이 될지, 부모의 모습만으로 감을 잡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소보사 안에서 이모 삼촌 같은 농인들의 삶을 통해 가치관을 형성하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게 되죠.”

 

소보사 수업 모습.
소보사의 수업은 수어로 진행된다.


유일한 입학 조건

소보사 학교는 입학금이 없다. 오히려 입학을 결심하기까지 소보사 선생님들이 부모님들을 설득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현실이다. 소보사 교육의 핵심은 ‘수어 사용’인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의 장애 사실을 알게 되면 ‘치료’를 통해 ‘청인처럼’ 듣고 말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 수어 사용은 배제해 버리기 쉽다. 청각에 전기적인 자극을 줘서 손상되거나 상실된 청신경 세포의 기능을 대행하도록 하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는 이들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수술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만은 않는다. 나라에서 수술 비용을 지원하긴 하지만 이후 재활에 대한 비용은 대부분 개인의 몫이다.

김 대표는 “수술이 잘 되고, 매핑(일종의 지도를 넣어주는 작업)이 잘 된 아이들은 청인처럼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부모가 얼른 수어를 줘야겠다는 판단을 못 한 채 중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수어를 배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언어 없이 살게 되는 거죠. 더 큰 문제는 정체성입니다. 아무리 수술이 잘 됐다고 해도 청인들만큼 소통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더군다나 요즘처럼 마스크를 쓰고 다닐 때는 문제가 더 심각하죠. 많은 농 청소년들이 ‘나는 친구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외로움을 느끼고 방황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공와우 수술과 관계없이 반드시 수어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소보사에 입학하려면 청인 부모라도 반드시 수어를 배워야 한다. 유일한 입학 조건이다. 김 대표는 “청각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80%가 수어를 못하고, 나머지 20%조차도 기초단어를 구사하는 수준이다. 농인 자녀가 혈육보다 같은 농인들을 더 가깝게 여기는 것도 수어의 부재 때문”이라며 “부모가 수어를 모른다면 가정의 역할이 온전하게 이뤄지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끝으로 “이미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수어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현실에 이뤄지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일반 사회에서 이것이 더딜지언정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교회에서는 이 꿈이 더 빨리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죠. 교회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와야 하나님의 형상을 더 가까이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농인 아이들을 보면서 불쌍하다는 마음이 생길 수는 있지만, 불쌍하다는 마음만으론 함께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불편함을 극복할 방법이 필요하죠. 그 방법이요? 하나님의 사랑뿐입니다. 교회는 그 사랑 때문에 모인 사람들 아닌가요?”

현장학습.
소보사의 수업은 교실 밖에서도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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