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달려갈 재능과 성도들 있으니 난 행복한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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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에 달려갈 재능과 성도들 있으니 난 행복한 목회자”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2.08.17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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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사명선언문] 부천노회장 정충원 목사(화운교회)

쫓겨나는 교역자 보고 충격, 그래도 부르심에 순종
선교와 섬김의 가교 역할… 필리핀 선교만 17년째
부천노회장 정충원 목사는 화운교회 성도들과 마음껏 섬길 수 있는 자신을 행복한 목회자라고 했다. 그는 섬김과 나눔이 필요한 현장과 사람을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있다.
부천노회장 정충원 목사는 화운교회 성도들과 마음껏 섬길 수 있는 자신을 행복한 목회자라고 했다. 그는 섬김과 나눔이 필요한 현장과 사람을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있다.

고향 후배들이 전도하겠다고 아무리 찾아와도 도저히 교회에 나갈 수 없었다. 나쁜 기억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천노회장 정충원 목사(화운교회)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아버지였던 전도사님이 교회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교역자를 반대하는 교인들로 인해 사례비는 고사하고 먹을 것도 땔감도 구하지 못했다. 쌍둥이였던 친구들은 밥을 자주 굶었고, 교회 신자도 아닌 어머니가 안타까워 끼니를 챙겨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결국 다섯 자녀를 둔 전도사님 가정은 교회를 떠나야 했다.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때도 정충원 목사를 기억하며 목회자로 부르실 준비를 하고 계셨던 듯하다.

“고등학교 3학년인데, 광주민주화운동 여파로 여름방학을 일찍 시작해 고향 여수로 내려왔습니다. 어느 날 둘째 누나 부탁으로 중고등부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신앙생활 하는 것이 너무 좋았고, 목사님도 너무 좋았습니다.”

“목사가 되는 그 날이 오면…”
정충원 목사는 예수를 믿은 직후부터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대입학력고사를 준비하면서도 교회생활은 열심이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안 됐는데도, 거리가 멀어 교회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하는 가정을 찾아가 심방하고 구역예배를 인도했다. 

“홀로 사시는 할머니와 장애우 가정을 정성껏 돌보고 어린 나이였지만 예배까지 인도했습니다. 아마 목회자가 되는 준비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어엿한 청년은 담임목사님이 정말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르지도 않았는데 교회로 출근했다. 목사님이 집회를 가든 회의를 가든 무조건 곁에서 가방을 들고 동행했다. 정충원 목사는 담임목사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긍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때가 차듯 그의 마음은 신학교에 진학하겠다는 뜻을 세웠다. 

“예수 믿는 집안이 아니기 때문에 큰 형님은 신학교 진학을 반대하셨어요. 도움 없이 내 힘으로 할 테니 반대만 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리니 허락해주셨습니다. ‘목사가 되는 날이 오면 내가 깊은 찬사를 보내주겠다’는 말과 함께요.”

정충원 목사는 서울에서 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건설현장을 다니며 돈을 모았다. 가게를 운영하던 형수는 매일 500원씩 모아두었다가 목돈이 되자 조용히 건네주었다. 한 학기를 마친 그는 독립을 위해 우선 하사관으로 입대해 6년간 복무하다 제대했다. 복무 중에도 마을 교회에서 총각 집사로 임명받고 충성스럽게 섬기다 당시 주일학교 교사였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받은 달란트 따라 사역 현장으로
제대 후 전도사로 부임한 교회에서도 맡은 사역에 최선을 다했다. 한번은 교회 건축이 시작되자 1500만원 헌금을 작정했다. 살던 반지하 전세보증금이 1500만원, 전도사 사례비는 겨우 30만원인데 누가 봐도 무리한 금액이었다. 심지어 담임목사님이 만류할 정도였다.

“아내와 함께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작정한 겁니다. 돌반지까지 가지고 있던 패물을 다 모아도 한참 모자랐어요. 그 때 지방에서 검찰청에 다니던 형님이 대학에 진학하는 조카를 서울로 보내며 우리집에 맡긴 겁니다. 매달 50만원을 송금해주어서 작정 헌금을 마칠 수 있었어요.”

정충원 목사는 끝까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드린 서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화운교회를 개척하고 일 년이 지났을 즈음 성탄절부터는 성탄헌금 전액을 구제를 위해 쓰고 있다. 기도하며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겠다’는 작은 마음이 시작이었다. 

“교회 설립 감사주일을 앞두고도 기도하는데, ‘네게 준 달란트는 무엇인가’, ‘교회를 세운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마음을 주시는 겁니다. 그날 저녁 필리핀에서 아는 선교사님이 강단 꾸미는 것이 가장 고민이 된다고 전화하셨어요. 그래서 필요한 공구를 모두 사 보내드렸습니다. 그랬는데 선교사님이 다시 연락 하셔서 직접 와서 해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정충원 목사는 부교역자 시절 약 2년 동안 교회를 직접 짓다시피 했던 경험이 있다. 어지간한 인테리어업자 못지않은 실력자였던 것. 그는 목회자 3명과 팀을 꾸려 선교지로 달려갔고 그렇게 17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선교를 가면 마을에서 축제가 벌어집니다. 선교팀이 오면 학교 수업까지 멈추고 우리에게 교육을 맡기기도 합니다. 700명에게 밥을 먹인 적도 있어요. 퍼레이드를 하면 경찰차가 에스코트까지 해줍니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말하던 정충원 목사는 선교 이야기를 시작하자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정 목사는 가끔 작은 교회들의 인테리어도 돕고 있다. 일반 업자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비용이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후배 목회자들과 팀을 꾸려 인테리어 일을 해오고 있다. 농어촌 교회, 개척 교회를 다니며 시설을 개선해주는 봉사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는 화운교회 성도들이 모은 교회설립기념 헌금이 소중하게 사용된다. 정 목사는 그렇게 늘 사람들을 잇는 섬김의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 

“부천노회, 가장 큰 자랑은 화목”
정충원 목사는 부천노회 최대 자랑은 ‘화목’이라고 했다. 회무를 해도 일사천리 진행되는 것은 화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묵묵히 섬기고 헌신하는 교회들이 큰 힘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선교사역 역시 부천노회 노회원들과 함께 이뤄지고 있고 필요한 재정도 노회원들이 동역하기 때문에 넘치도록 마련되고 있다. 

“가을 노회 때는 필리핀으로 노회원들과 선교여행을 가려고 합니다. 단순히 여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산지족을 찾아가 마을잔치를 하며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선교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노회 목사님들과 그 마음을 나누고 돌아올 계획입니다.” 

정 목사는 자신을 ‘행복한 목회자’라고 했다. 화운교회 성도들이 마음껏 선교하고 구제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기 때문이란다. 누군가를 도와야 할 때면 항상 성도들과 작정 헌금을 한다. 부담이지만 지금 우리가 할 일을 하자고 성도들을 격려하고, 그런 담임목사를 따라 성도들은 순종한다. 

“지금 할 일을 못하면 하나님께 할 말이 없잖아요. 내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우리 교회는 나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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