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끼빠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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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끼빠빠
  • 임문혁 장로
  • 승인 2022.08.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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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혁 장로/서울 아현교회 원로장로·시인·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요즈음 교회에서도 청소년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내 딴에는 좀 가까이 다가가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그들이 쓰는 줄임말을 알아듣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뭐라고 말을 붙이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웬 갑툭튀?”(웬 일로 갑자기 튀어나와?)라고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내가 그들에게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고 싶다고 말하면 “어쩔TV 저쩔TV?”(그래서 어쩔 건데요 저쩔 건데요)라는 반응이다. ‘너희들은 어른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없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분명히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데요)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큰맘 먹고 내가 커피를 사겠노라고 하면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것이고, “장로님은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시죠? 라떼(나 때는 말이야)는 절대 시키지 마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라떼 좋아하시는 어른은 TMI(투 머치 인포메이션 - 너무 많은 말을 한다)거든요” 라는 말을 덧붙일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말로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려 애쓰면, 누군가는 자꾸 그러시는 건 “무지개매너”(매우 매너가 없음)”이니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하시라고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빼박캔트’(빼도 박도 못함) 신세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우리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보릿고개’라는 말을 알아들을까? ‘짚신’, ‘구멍 난 양말 기워 신기’, ‘깜지 쓰기’ 같은 말을 알까?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말을 알아들을까? 모를 것이다.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어찌 청소년들뿐이겠는가. 회사의 경영진들은 노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하고, 노조원들은 경영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진보 진영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하고 진보는 보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게 바로 바벨탑의 언어가 아니겠는가. 벽돌을 만들어 단단하게 구워내고 벽돌에 역청을 발라 쌓아 올려 도시를 세우고 하늘까지 닿을 높은 탑을 쌓고자 하지만 언어가 혼잡해지자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고, 말이 안 통하니 쌓던 탑은 무너지고 세상 곳곳으로 흩어져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물질의 탑, 육신의 탑, 탐욕의 탑인 바벨탑을 쌓아 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언어가 혼란된 것이다. 자기 욕망에 따라 각자 자기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함으로써 닫힌 말에 갇혀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닫힌 문을 열고 서로의 말을 알아듣고, 소통하며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을까? 물질의 말 대신 정신의 말, 육신의 말 대신에 영의 말, 탐욕의 말 대신에 사랑의 말을 한다면 서로 알아듣고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런 말은 어떤 말일까? 사도행전 2장에 그 답이 나와 있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이 다 함께 한 곳에 있을 때 그 언어는 불꽃의 형상으로 하늘에서 내려온다. 난데없이 맹렬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났고, 그들은 여러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모인 순례자들의 귀엔 그들 각자의 모국어로 들렸다. 바대 사람, 메대 사람, 엘람 사람, 메소포타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토와 아시아, 부루기아와 밤빌리아, 이집트, 구레네에 속한 리비아 여러 지역에서 온 방문객들, 로마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과 개종자들,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까지! 이들이 다 갈릴리 사람들인데 이들이 하는 말이 각 사람의 모국어로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서로 소통이 되는 말, 이것이 열린 성령의 말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언어를 꿈꾼다. 청소년은 청소년의 말을 하고 노인은 노인의 말을 하지만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경영자는 노동자의 말을 노동자는 경영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 보수는 진보와 진보는 보수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 동은 서를 서는 동을 품어 안을 수 있는 사랑의 언어, 그것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의 언어 - 성령의 언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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