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은 존귀하고 소중한 곳, 가증한 신앙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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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은 존귀하고 소중한 곳, 가증한 신앙 버려야
  • 유선명 교수(백석대)
  • 승인 2022.08.1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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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48 -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렘 7:4)

성전은 영혼의 안식처요 고향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 어디에나 계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성전은 특별한 의미에서 그분의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에는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고백하는 시들이 넘쳐납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성전 뜰에 서 있기만 해도 찬송이 우러나왔습니다.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시 135:2).” 구약 성도들의 마음에 성전은 그토록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성전 문 앞에 서서 외치라 하십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7:2-4)”! “여호와의 성전이라”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은 마음의 감동 없이 입으로만 주문 외우듯 고백하는 모습을 풍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성전을 드나드는 이들의 마음에 진실한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면서 성전을 칭송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짓입니다.

우리를 깔보는 사람이 우리가 사는 집을 멋지다고 칭찬한들 기분이 좋겠습니까? 성전을 칭송하는 말이 진실이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3절).” 성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집약한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지 않으면서, 그럴 생각조차 없으면서. 단지 거룩한 장소, 거룩한 예식, 거룩한 언어에만 매달린다면 하나님의 근심과 진노를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주님의 질책이 계속됩니다.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7:9-10).” 

우리는 이 말씀 앞에 떨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정말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원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의 욕심과 미움이, 습관이 되어버린 거짓과 위선이 얼마나 흉물스러운지, 우리가 고백하고 노래하는 신앙의 언어가 마음을 담지 않은 입놀림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재물과 권력, 쾌락에 마음을 내어주고 살면서 번쩍이는 예배당에서 아름다운 찬양을 들으며 자신의 종교성에 도취해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를 누리기 위해 요구하신 일은 대단한 희생이나 초월적 영성이 아니라 그저 반듯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웃들 간에 정의를 행하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고, 무고한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말고 ‘다른 신들’을 뒤따라 화를 자초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5-6절).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갑’인 곳에서 ‘을’이 눈물 흘리지 않게, 우리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우리 매정함을 원망하지 않게, 우리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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