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리더로 세우는 교회, “목회에 전념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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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리더로 세우는 교회, “목회에 전념할 수밖에요”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2.07.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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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사명선언문] 한뜻교회 한상윤 목사

촉망받는 서양화가에서 목회자로 부르심
말씀 훈련과 양육으로 평신도 중심 목회
화단이 주목하는 작가였던 한상윤 목사는 목회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한 목사는 평신도를 리더로 세우는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자신의 그림 앞에 선 한상윤 목사.
화단이 주목하는 작가였던 한상윤 목사는 목회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한 목사는 평신도를 리더로 세우는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자신의 그림 앞에 선 한상윤 목사.

'서울미술제 서양화 부문 대상’, ‘구상전·한국미술대상전 등 입상’, ‘88 서울올림픽 기념전 서울미술상 수상’, ‘서울미술제 초대작가상’, ‘뉴욕 및 국내외 작품전 개최’. 

내로라하는 수상 이력을 갖고 있던 촉망받는 젊은 서양화가는 목회자로 부름 받았다. 종교에는 일절 관심도 없었고 그림에만 몰두하던 청년 작가는 언젠가부터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연단의 시간을 가져야 했고,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를 목회의 길로 인도하셨다. 새 시대를 열어가는 비전을 갖고 평신도를 동역자로 세우는 공동체, 한뜻교회의 한상윤 담임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청라국제도시에 위치한 한뜻교회에는 한 목사가 화가 시절 그렸던 독특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신앙 개인교습을 시켜주셨죠”
“교회 문턱에 들어선 이후로 주일예배에 빠진 적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보니 제가 성가대원을 하고 있었어요. 주일이면 교회에서 종일 만나는 교인들이 무슨 재미로 사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은 저를 조금씩 만지기 시작하셨습니다.”

한상윤 목사와 사모는 결혼 전까진 불신자였다. 결혼 후 신앙을 갖게 되었고, 부부는 어려운 시간을 겪으며 뜨겁게 하나님을 만났다. 

“신혼 초 둘째 아이를 낳고 아내가 참 힘들어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산후우울증’이 심각하게 찾아왔던 것 같아요. 아내와 함께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전 이 때를 ‘신앙의 개인 교습’이라고 부르는데 기도를 참 많이 했습니다.”

초신자 시절 한 목사는 ‘주여 삼창’을 큰소리로 외치거나, 방언 기도를 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고통에 직면하자 그는 아내와 함께 매일 밤 2번 이상 예배를 드리며, 밤새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표현대로 하나님께서는 개인 교습을 하며 신앙훈련을 시키셨다. 뜨거운 신앙체험을 하면서 산기도도 많이 다녔고, 이름 있는 기도원마다 찾아다니면서 울부짖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찬송가 1장부터 한 장 한 장을 부르며 아내와 참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가사 하나하나가 폐부에 박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은 ‘주여’ 하는 외침이 저 밑으로부터 솟구치듯 끌어 올랐습니다.”

백석에서 공부, 목회 훈련의 때
한상윤 목사는 자신이 그림을 내려놓을 것이란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림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능력도 출중했다.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창의적 작품세계를 인정받아 화단에서 크게 주목받았던 작가였다. 

그는 시간이 나기만 하면 갤러리로 달려갔다. 서울 도심의 유명 백화점 내 갤러리부터 안국동, 인사동, 대학로 등을 순회하며 주류와 비주류 가리지 않고 그림을 보고 또 봤다. 자신보다 더 많은 그림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유다. 

그랬던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목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님 중 한 분이 당시 백석 여목회과에 진학하면서 뜻밖의 말을 저에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본인과 함께 부르셨다는데, 그 때는 피식 웃고 말았죠. 그런데 제 마음속에는 목회에 대한 생각이 심겼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을 세 번 부르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 뜻을 검증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부흥회 강사로 왔던 당시 백석신학교 김종기 교수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고, 신학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스스로 검증의 시간을 갖던 한상윤 목사는 그 때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는 백석대 신대원에서 공부한 시간이 목회 역량을 키우는 귀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신대원 학생회장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자주 받았다. 평소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사했다. 그런데 지도교수까지 추천하자 그는 학생회장에 출마해 주·야간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이변과 같은 결과였다. 

양육, 사람을 온전케 하는 소명
한상윤 목사는 신대원을 졸업하면서 곧 담임교역자로 목회를 시작했다. 누나와 함께 개척했던 인천 간석동 한뜻교회에서 정식으로 청빙을 받은 것이다. 교회는 꾸준히 성장해 석남동으로 이전하고 예배당을 지었다. 약 8년 전 지금 청라국제도시로 교회를 옮겨 한 차례 더 성전 건축을 이뤄냈다. 

1990년 교회 개척 후 1993년까지가 1기 개척단계라면, 1994년부터 1996년까지는 2기 발전단계, 1997년 석남동 성전을 짓고 2011년 청라국제도시로 교회를 이전해 지금까지는 3기 성장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한상윤 목사는 ‘평신도를 깨운다’는 비전으로 제자훈련을 이끌었던 옥한흠 목사의 제자 고 박정식 목사(은혜의교회)로부터 양육 목회를 접했다. 평신도를 깨우는 목회를 입증했던 박정식 목사와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한뜻교회 도약을 위해 청라 이전을 권한 것도 박 목사였다.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로 세우며 ‘총론적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저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특히 양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던 게 제 약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박 목사님을 통해서 양육을 경험한 후 지금까지 평신도를 키우는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한뜻교회 성도들은 베델성서교육원 훈련으로 창세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깊이 있게 공부한다. 때때로 한 목사의 주제 특강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성도들 누구나 제자훈련을 받을 수 있고, 특별히 리더로 자질을 가진 평신도는 집중 훈련으로 성장하게 된다. 

한 목사는 평신도가 교회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확고하다. 한상윤 목사는 평신도를 세우는 목회를 하면 더욱 목회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복음을 위한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셨고, 둘째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이 모범을 보여준 것처럼 이 사역에 균형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먼저 의존하는 가운데 복음을 잘 전할 뿐 아니라 각 사람을 온전케 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대중 설교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양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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