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일과 일터사역(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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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일과 일터사역(4)
  • 오만종 목사
  • 승인 2022.07.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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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종 목사/오빌교회
오만종 목사/오빌교회 담임<br>
오만종 목사/오빌교회 담임

카톨릭의 영향으로 일이 게으름이 되었다. 일을 거룩한 일과 세속적인 일로 구분하여 종교적인 일만 영적인 일로 강조한 부분이 그렇다. 종교 개혁의 내용 중 일부는 우리의 일이 예배가 될 수 있다는 성경적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은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나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영적인 의미가 있다.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은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물을 붓고, 설거지를 하고, 신발을 신고,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라면 모두 하나”라고 썼다. 그리고 루터는 “사람이 기저귀를 바꿀 때 하나님과 천사들은 미소 지었다”고 말한다.

반면 일의 우상이라는 다른 왜곡이 생겨났다. 역사가들은 이것을 “개신교의 왜곡”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개신교 형태의 문화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카톨릭 왜곡은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나누는 이원론의 형태이지만, 개신교 왜곡은 자본주의 안에서 일을 우상시 한 것이다.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국 신앙과 부름이 완전히 분리 된 날이 왔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소명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는 각 시민이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일 자체가 신성시 되었다.”

이것이 일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그것은 하나님 대신 우리를 경배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일에 대한 우상숭배적 태도를 회개한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2~4)

복음은 우리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변화시킨다. 우리의 정체성과 안전이 이제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이 일의 여건과 환경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우리의 존재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두 번째의 변화로 이어진다.

구속받은 자는 회개했기 때문에 다시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한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사실, 바울은 창세기로 돌아가 구속받은 일꾼에게 일어난 변화를 설명한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사람은 구속받았지만 일은 구속받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구속받은 까닭에, 이제 일은 우리의 이름, 우리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의 이름,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구속받아 하나님의 일의 산물로 재창조되었으므로, 우리의 일은 다시 자유로운 예배로 드려질 수 있다. 그 일 자체가 하나님의 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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