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출소자 사역, 누군가 해야 한다면 교회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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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출소자 사역, 누군가 해야 한다면 교회가 나서야”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2.06.2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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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자들에게 사랑과 복음 나누는 서울동부구치소 김영식 소장

교도관으로 34년째, 가는 곳마다 선교 힘써
“범죄 유혹 극복은 영적 변화 일어나야 가능”
퇴임 후 출소자 사역 위해 목사 안수도 받아

“4~5살이었을 겁니다. 군산에 살 땐데 혼자 어린이 부흥집회를 찾아갔어요. 입구 바닥에 신발이 가득해 잃어버릴까 봐 꼭 끌어안고 참석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에게 교회는 유일한 안식처였어요.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찬양은 아무리 불러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2,300여명 수형자를 책임지고 있는 서울동부구치소 김영식 소장은 교회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비뚤어진 인생이 됐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던 그에게 신앙은 가야할 길을 비추어준 곳이다. 교회학교 선생님들은 아무런 조건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는 그저 ‘참 좋은 사람’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청년 시절 한때는 신앙에서 떠난 적도 있다. 진리를 탐구한다며 배회하기도 했다. 결국 성경 말씀이 열리고 예수님이 진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이후에는 한길을 걸으며 사명을 좇아 달려왔다. 김 소장은 중범죄 출소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특별한 계획을 갖고 기도 중이다. 신학을 공부하고 지난 4월 목사안수까지 받은 것도 이 사역을 위해서다.

서울동부구치소 김영식 소장은 3년 신학공부를 마치고 지난 봄 목사안수를 받았다. 수형자들의 재범을 막고 사회복귀를 위해 노력해온 그는 퇴임 후 중범죄자 출소자를 위한 사역을 위해서다. 그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이라면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협력을 요청했다.
서울동부구치소 김영식 소장은 3년 신학공부를 마치고 지난 봄 목사안수를 받았다. 수형자들의 재범을 막고 사회복귀를 위해 노력해온 그는 퇴임 후 중범죄자 출소자를 위한 사역을 위해서다. 그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이라면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협력을 요청했다.

진짜 진리를 찾아 이단까지 만나
“범죄자들은 가정 결핍을 겪고 반사회적 인격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이었죠. 교회 선생님들에게서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분들이 저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김영식 소장은 고등학교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고백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한 이후 문학동아리에 들어갔고 탈춤반 회장을 하면서 신앙에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됐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자신의 구원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엉뚱하지만 진리를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훌륭한 문학작품을 보아도 삶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작가는 무력했고, 삶은 허무했습니다. 교도관 시험에 합격한 이후에는 모든 종교를 다 경험해보면서 진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싶은 마음에, 일찍 자리 잡고 싶었던 그는 교도관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교도관 직종에 대해 알수록 이렇게 좋은 직업이 있나 싶었다. 장학금을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던 그는 곧장 합격했다. 

4학년 2학기, 정식 발령을 앞둔 그는 법당, 성당, 철학관을 비롯해 여호와의증인, 구원파와 같은 이단까지 찾아다니며 진리를 탐구했다. 그의 표현대로 이단에게도 아주 열린 마음이었다. 하지만 허무는 계속됐고, 울림이 없는 사람의 말뿐이었다. 

“정작 파랑새는 가까이 있었습니다. 학교 체육관에서 부흥집회가 있었는데, 거의 끝마칠 무렵 들어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들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죠. 그런데 십자가 사건이 마음속으로 이해되는 겁니다. 십자가 사건은 사람의 상상력으로 지어낼 수 없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그날부터 다시 성경책을 보기 시작했다. 성령께 성경의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말씀을 보면 볼수록 진리에 대한 확신은 더 강해졌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교도관 1년차 당시, 김영식 소장은 한센인 수형자들이 있던 소록도지소에 자원해 들어갔다. 1991년 지소장으로 근무하던 모습.

“소록도 교도소, 제가 가겠습니다”
시험 합격 후 6개월 만에 순천교도소로 첫 발령이 났다. 진리를 찾겠다고 떠돌던 그는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생각의 중심은 하나님께 향했고, 성령이 삶의 작은 부분까지 간섭하시는 것을 항상 체험했다. 근무 일 년 만에 그는 한센병(나환자) 수형자들이 있던 당시 소록도지소에 가겠다고 자원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소록도는 인기 근무처였다. 강력범죄 수형자가 적은 탓에 지원자가 많았던 것. 그저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그에게는 난관이었다. 1년 차 교도관은 교도소장을 찾아가 면담을 신청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수형자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아시지 않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섬기고 싶은 마음이 앞섰는데, 저를 이해해주셔서 소장님이 결국 보내주셨어요. 수형자들이 한센병 환자이기 때문에 직원들은 문손잡이를 잡는 것에도 거부감이 있었어요. 저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더라고요. 같이 음식을 해먹을 정도였으니까요.”

한센병 수형자들의 몸에서는 고름이 나고, 파리 떼가 붙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교도관은 그것이 거슬리지 않았다. 세례도 소록도 교회에서 받았다. 섬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과 찬양밴드도 만들고, 한센인 주민들과 성경공부도 시작했다. 

“소록도로 전근 와 처음으로 한센인 교우 집에서 성경공부를 하는데 만두를 쪄 내왔습니다. 사흘 금식 중 이틀째였는데, 성경에 기름을 바르고 금식하라던 말씀이 생각나 그냥 먹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들에게는 진심으로 함께한다는 뜻으로 여겨졌습니다. 일종의 테스트를 통과한 셈이죠.”

“성령의 역사와 사단의 계략 공존”
김영식 소장은 교도관 생활만 34년 차다. 소록도 임기를 마친 후 군산교도소로 발령이 나자 그곳에서 처음 신우회를 만들었다. 가는 곳마다 신우회를 만들어 교정 선교를 위해 힘썼다. 

“형집행법은 수형자의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건강한 사회복귀를 위해서는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훈육과 통제, 교육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범죄 유혹을 이기고 죄성을 극복하는 힘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있습니다. 회심으로 영적 변화가 일어나야 가능한 일입니다.”

수형자들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겠다고 단단히 각오하고 출소하지만, 다시 교도소에 돌어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돈과 인맥과 같은 자기 힘을 믿었지만 결국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타까운 모습을 김 소장은 자주 목격한다. 더 문제는 사회와 이웃의 따가운 시선과 낙인으로 분노와 반사회성이 커져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수형자가 동의하고 마음이 준비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가난한 마음일 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오셔서 위로와 사랑을 나누면서 수형자들은 마음을 엽니다. 교도소는 치열한 성령의 역사와 사단의 계략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김 소장은 미결수형자 약 1700명, 수형자 500명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 있는 곳에서 회복을 경험하는 반전을 위해 소망하는 교정 책임자의 기도다. 김 소장은 교도관들에게 “먼저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는 당부를 자주 한다. 자살예방을 위해 상담도 직접 하고 있으며, 자살을 시도한 청소년은 반드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교도관은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따뜻하게 대화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면 마음 한 켠부터 내어줍니다. 신앙을 가진 교도관이라면, 수형자가 동의하는 경우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전한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 소장은 은퇴 후 출소자 공동체를 사역을 위해 3년 동안 신학공부를 마치고 올해 봄 목사안수를 받았다. 

중범죄자 돕는 코사 코리아 
김영식 소장은 전북백석신학교에서 3년 동안 공부한 후 올해 봄 목사안수를 받았다. 평소 출소자 공동체 교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그는 퇴직 후 본격적인 사역을 위해 미리 준비했다. 구체적으로 출소자들이 일반 교회에 적응할 수 있는 징검다리 교회를 목표하고 있다. 출소자 사역을 위한 적임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제 관심은 갈 곳이 없는 출소자들에게 있습니다. 출소자들이 보통의 교회에서 적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특히 장기 수형자라면 별에서 온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일반 교인들의 탓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출소자 사역을 오랫동안 아주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준비해왔다. 2011년 법무부 사무관으로 재임할 당시 자료를 찾던 중 캐나다 해밀턴시에서 추진하고 있던 코사(CoSA)를 알게 됐다.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중범죄자의 출소를 앞두고 해밀턴시가 큰 혼란에 빠졌고, 당시 지역교회가 중심이 돼 중범죄자를 위한 서클 멘토링 프로그램(출소자 멘티 1명에 자원봉사 시민 멘토 3~5명)을 시작했던 것이 단체의 시작이었다. 김 소장은 이 활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행정안전부에 연구를 제안해 직접 단기연수를 다녀왔다.

그렇게 2014년 8월 코사 코리아(이사장: 박정란)가 창립됐다. 소년원과 교도소, 보호관찰소에서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해 인정받았고, 2019년에는 정식 법무부 비영리법인으로 인가받았다. 김 소장은 운영자문위원장으로 돕고 있다. 

“범죄자만 보면 누구도 나서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면 교회가 적임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코사 코리아는 분야별 전문가들이 집단 멘토링을 하면서 중범죄자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역을 위해서는 제가 적임자라고 할 수 있죠.”

김 소장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수형자의 자녀들을 위한 멘토링을 하고 있는 NGO BBBS 연수를 다녀온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단체 역시 지역교회 중심이다. 

2014년 8월 창립된 코사 코리아는 출소자들을 대상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안정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 소장은 이런 준비과정을 거쳐 2014년 출소자 공동체 사회적기업 ‘행복투게더’를 설립을 주도적으로 도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7곳에 불과한 민간갱생보호법인 중 한 곳인 ‘굿라이프’를 창립한 것도 그의 노력이 컸다. 

“중범죄자는 돌봄을 받지 못하면 더욱 반사회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범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가해자를 돌보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한 일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을 교회가 동행해주면 좋겠습니다. 후원과 지지를 보내주시고, 자원봉사로 섬겨주시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3년 정도 남은 정년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출소자들을 섬기려고 한다. 조만간 출소자 기독공동체 개설을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문제는 주민들의 반대가 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김 소장은 오늘 더 기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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