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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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로 이야기
  • 이복규 장로
  • 승인 2022.06.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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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규 장로/서울 산성감리교회 장로·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얼마 전에 아주 반가운 분을 만났다. 18년 전 교육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고려인 구전설화를 채록하러 갔을 때 만났던 배 모 장로다.

그때 이 분은 쉼켄트에서 보일러 사업이 궤도에 올라 있었는데, 모범 납세자상을 받아 이름이 나 있었다. 고려인이 카자흐스탄에 벼농사를 처음 전파한 것처럼, 우리의 온돌 난방을 최초로 카자흐스탄에 보급한 전설적인 분이기도 하다. 배 장로님은 내가 머무는 동안 고려인들을 소개도 해주고 자기 집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었다.

6개월간의 조사가 끝나 귀국하고 나서 지금껏 소식을 모르고 지내다 최근에 다시 만났다. 최근에 잠시 입국해 우연히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잡기>라는 책을 읽다가 나의 이름을 보는 바람에 만났다니 참으로 극적이다. 그 책을 내가 안 썼더라면, 썼어도 그분이 안 읽었더라면, 읽었더라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더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이었으니, 하나님의 은혜다.

밀린 정담을 나누다가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있었던 미담을 들려주었다. 남은 돈이 달랑 80만 원이었다는 배 사장, 사업자금 5천만 원이 필요했지만 융통할 곳이 없어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때 한국에서 교사로 일하다 명예퇴직하고 그곳에서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던 김 모 장로한테 말하자 선뜻 빌려주어 성공했다는 이야기였다. 퇴직금 전부를, 아무 연고도 없는 사이에, 그저 같은 신자로서 우정으로 빌려주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 다음 이야기가 더욱 감동이었다. 사업에 완전 성공하고 나서 한번 물었다고 한다.

“장로님, 만약 내가 사업에 실패했다면 그 돈 다 떼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빌려주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장로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성공 못하면, 그냥 못 받을 셈 치고 준 것이지”

흔히 교회에서 신자끼리 금전거래하다가 잘못되는 수가 있다.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신자끼리는 아예 금전거래를 하지 말라고들 충고한다. 부득이 돈을 빌려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김 장로같이 해야 한다. 내게 있는 것으로 도와주되, 설령 잘못되어 못 받는다 해도 실망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빌려주어야 한다.

이는 형제애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받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다 해도 골육의 어려움에 동참한 것만으로 만족해하는 것이 친남매간의 인지상정이다. 김 장로의 형제 사랑이 이와 같다. 고향도 성도 다르지만,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장로가 만리타향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자금이 없다고 하자, 마치 자기 친남매의 일처럼 여겼기에 아들 결혼자금으로 지니고 있던 퇴직금을 준 것이다. 가슴 뭉클하게 하는 미담이었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평생에 가장 큰 은혜를 입은 배 사장이 김 장로한테 빚을 갚은 사연이다. 성공하고 나서 용산 어느 호텔에서 김 장로를 만났더니,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더란다.

“장로님, 무슨 일로 그러세요?”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평생 소원이 모국 방문이지요. 그 소원 풀어주려 희망자 신청받아 추진하고 있는데, 경비 조달이 만만치 않네요.”

“걱정 마세요. 제가 드릴게요.”

이래서 김 장로는 고려인 모국 방문을 세 차례에 걸쳐 마쳤다고 한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배 장로에게 사업 성공의 은혜를 베푼 것은 이때 쓰시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 고려인들 때문에 수심이 가득했던 김 장로의 그 갸륵한 얼굴 표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 후원자로 동참해 쓰임 받은 배 사장의 보은도 인상적이다. 이런 분들이 진짜 장로, 진짜 신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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