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청소년 지도자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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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청소년 지도자에게 고함
  • 승인 2001.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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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남다른 신앙의 복을 주셨다. 이땅 어디를 가보아도 그곳에는 교회가 있고 시골의 어느 마을에 가보아도 우리는 그곳에서 우뚝 서있는 교회의 종탑들을 찾아 보기가 어렵지 않다. 오랫동안 유교문화로 찌들었던 이 땅에, 그리고 불교의 영향과 무속의 관습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이 땅에 복음이 주어진지 1백여 년이라는 단기간 동안에 선교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이 땅에는 풍부한 신앙의 축복이 주어졌다.

더욱 감사한 일은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지금도 신앙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열정적인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선교사가 되겠다고 기도하고 있으며, 신학교마다 지망생들이 넘치고 있으며 교회마다 젊은이들이 모여서 학생들과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오늘같이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합화된 시대에는 교사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성한지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단순히 지식의 전달교육이라면 몰라도 영적인 문제와 구원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교회학교 교사들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만큼 우수한 자질이 요구된다.

어린아이들은 비유하자면 마치 백지와도 같이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지와 같은 하얀 마음에 무엇을 그려주느냐에 따라서 그 어린아이의 장래는 달라질 것이고 그 아이의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다.

또한 그것이 중·고등학생 그리고 청년들이라면 이점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중·고등학생들은 한창 변화되는 시기이고 장래를 위한 준비의 분기점에 놓여 있는 시기이므로 교사의 역할에 따라서는 그 학생들의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학교의 교사들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영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영적으로 변화를 받는데 가장 좋은 시기가 바로 이 청소년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때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분기점에 놓이게 될 때가 있다.

그 지점은 누군가가 약간의 영향만 준다 해도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는 운명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순간에 해당된다. 이점에 있어서는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겠으나 장래의 분기점에 서 있는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점은 더욱 절박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 플라톤은 어려서 정치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자랐던 사람이다. 그런 꿈을 가지고 성장하던 그가 어느날 우연잖케 소크라테스라는 당대의 유명한 소피스트를 만나면서 그의 생각과 꿈은 일순간에 바뀌었다. 단 한차례 소크라테스와의 만남에서 이룬 짧막한 대화가 플라톤의 인생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 마침내 그는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내가 변화의 시기에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속한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오늘 교회학교 교사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제 여름이 오면 교회들마다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준비하느라 한창 분주하게 될 것이다. 바라건대 교회들마다 수련회를 갖되 놀이를 위한 수련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린이부터 중·고등학생, 청년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진지하게 영적으로 거듭나는 수련회로, 그리고 차세대를 길러내는 수련회로 바뀌어야 되고 그리고 기도하는 수련회로 전환돼야 한다.

오늘은 영상매체와 컴퓨터 게임기, 그리고 상업화된 각종 놀이를 겸한 수련회들이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빼앗아가고 있다. 교회교육에서도 덩달아 그런 프로그램을 흉내내거나 무분별하게 일시적 아이들을 잡는 효과만을 위해 수단화한다면 금년 수련회도 예년 수련회 수준을 넘지 못하는 진부한 모임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는 교회교육의 본질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개발에 매달려 보다 소중한 것을 잃고 시대에 너무 영입하지 말고 가르치는 일에 임하도록 전열을 가다듬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교사들이 영성으로 보완되고 새로워지고 확신있는 영적 교사들이 되기 위한 준비가 있었으면 한다. 교사들이 이렇게 자신이 먼저 영적성숙을 이루어 보다 확신있고 분명하게 가르칠 때 그 가르침으로 또 다른 새생명들이 거듭나는 축복이 주어질 것이고 기독교 교육다운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정익목사(신촌성결교회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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