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콜택시 타면 된다고요? 6시간 기다리는 심정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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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콜택시 타면 된다고요? 6시간 기다리는 심정 아시나요”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2.04.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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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워진 길, 장애인 이동권을 말하다(상)

지하철이 또 멈췄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며 대중교통 시위를 감행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원인이다. 꽉 막힌 철로만큼이나 한시가 급한 출근길 직장인들의 마음도 답답하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의 수가 상당하다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짜증 섞인 하소연으로 시작해 거친 말도 곧잘 쏟아진다.

욕을 먹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 이들도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비판과 비난을 감수해가며 지하철을 가로막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법을 어기고 시민들의 불편을 강제하면서까지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걸까.

장애인 시위와 이동권 실태에 대한 장애인들의 솔직한 생각이 궁금했다. 지난 13일 한국밀알선교단 소속 장애가 있는 간사 4명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이날 방담에는 시각장애인 김윤정, 김은비 간사, 뇌병변장애인 이석희 간사, 지체장애인 조수정 간사가 참여해 기탄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밀알선교단 단장 조병성 목사도 함께 했다.

장애인들은 출근길 지하철 시위 방법은 동의하지 않지만 이동권 개선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김윤정 간사, 김은비 간사, 조병성 목사, 이석희 간사. 조수정 간사는 줌 화상회의로 대화에 참여했다.
장애인들은 출근길 지하철 시위 방법은 동의하지 않지만 이동권 개선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김윤정 간사, 김은비 간사, 조병성 목사, 이석희 간사. 조수정 간사는 줌 화상회의로 대화에 참여했다.

 

시민 불편 끼쳐선 안 돼

지체장애인으로 휠체어를 이용하고 있는 조수정 간사. 조 간사는 작년 10월까지 거주지인 김포로부터 밀알 사무실이 위치한 수서나 종로까지 출퇴근했다.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긴 거리. 운전을 할 수 없었던 조 간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김포에 경전철이 없던 시절, 지하철역까지는 아버지가 차로 데려다주셨고 그 이후 사무실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의 한복판에 선 당사자인 셈이다.

시위에 대한 생각을 묻자 먼저 돌아온 대답은 역설적이었다. 장애인인 조 간사조차 장애인 시위에 의해 출근길이 지연된 경험이 있다는 것. 조 간사는 전장연의 요구를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시민들의 발을 붙잡는 출퇴근 시간의 시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석희 간사 역시 목요일마다 모이는 밀알 기도팀에서 이번 시위를 놓고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그때 공통적으로 나온 의견이 이동권 보장 문제의 공론화는 필요하나 출퇴근 시간의 시위는 자제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계속될 때 시민들이 장애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장연 측의 요구가 지체장애인의 입장에만 편향돼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근 에스컬레이터를 전동휠체어로 타고 올라가다 굴러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전장연 측은 왜 에스컬레이터 앞에 차단봉을 세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 차단봉은 무방비한 장애물이다. 부딪히면 충격도 심하고 다치기도 쉽다.

시각장애인 김윤정 간사는 대중교통은 누구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초점이 너무 지체장애인에게만 맞춰져 있는 것은 달갑지 않다. 한 유형의 장애인보다는 모든 장애 종류를 배려해서 이동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애인 이동권은 후진국

이렇듯 출근길 시위라는 방식에 대해선 같은 장애인들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보였다. 좀 더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시위 방식은 개선이 필요하지만 이동권 확보는 절실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오랜 기간 휠체어로 대중교통 출퇴근을 이어온 조수정 간사는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휠체어로 버스를 이용하기는 아직 불편함이 많습니다. 서울은 그나마 저상버스가 많이 보급된 편이지만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저상버스가 없어 버스를 타지 못할 때가 많아요. 저상버스가 있더라도 기사님이 리프트 작동법을 모르거나 심지어는 리프트가 고장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수무책이에요.”

그나마 지하철은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서울 지하철 기준 90% 이상의 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다. 문제는 지하철로 장애인들이 가려는 모든 장소를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집에서 지하철, 혹은 지하철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단이 요원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지하철이라 해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몇몇 역이라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해 출구 밖으로 나가는 데만 길게는 30분이 걸린다. 장애인들을 섬기는 조병성 목사는 늘 안타까운 심정이다.

한 번은 휠체어타신 분을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혹시나 싶어 버스회사에 전화해 리프트를 이용하니 도보에 가까이 버스를 정차해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도 버스는 도보에서 멀리 주차해 리프트를 내릴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앞뒤 차들을 조율해 다시 버스를 대야 했고 지연된 시간 동안 기다리는 시민들의 시선은 아무 잘못이 없는 장애인에게 쏠렸습니다. 저 장애인 하나 때문에 우리가 버스를 늦게 탄다는 원망의 눈빛이 느껴졌어요.”

혹자는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론한다. 하지만 이날 모인 장애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 전국 장애인들의 수에 비해 운영되는 콜택시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뇌병변 장애인 이석희 간사도 기다리다 지쳐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하는 일이 잦다.

콜택시 배차를 신청하면 30분은 기본이고 1시간 기다리는 것도 예삿일입니다. 얼마 전엔 고향인 김해에 갔는데 주소지가 서울이라는 이유로 김해 장애인 콜택시를 못 탄다고 하더군요. 지역에 따라서 병원 갈 때 정도만 탈 수 있고 일상에서는 이용하지 못하는 곳도 있어요. 장애인 콜택시를 대안이라고 제시하기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시각 장애인의 경우 이들을 위한 장애인 콜택시 복지콜이 따로 있다. 최근에는 일반택시 콜서비스인 나비콜’, ‘N’, ‘마카롱과 서울시가 계약을 맺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바우처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서비스에도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김은비 간사는 복지콜 배차를 무려 6시간이나 기다려 본 경험도 있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는 기사들이 콜을 잡지 않아 이용에 어려움이 많아요. 거기다 복지콜 기사님들은 시각 장애인에 대한 교육을 받는 것에 비해 일반 콜택시 기사님들은 시각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많습니다. 최근엔 목적지를 제대로 말씀드렸는데도 2km가 넘는 곳에 내려주고 확인도 없이 가버린 일이 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제가 어떻게 목적지에 가야할 지 순간 막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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