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설, 예수님의 인성과 십자가 사건 ‘허상’이라고 주장
상태바
가현설, 예수님의 인성과 십자가 사건 ‘허상’이라고 주장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2.04.19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초기 교회의 이단과 이설(6)

앞에서, 가현설을 반박하는 요한2서 7절, 곧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경고하고 있다는 점을 소개했는데, 요한일서 4장 2절에서는 역으로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복음서와 서신서 기록자들은 옛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증거하면서 가현설을 거부하고 있다. 또 교부들이나 초기 신학자들이 가현설을 단죄한 것을 보면 가현설이 오랜 기간 동안 교회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가현설 입장에서 기록한 ‘베드로의 복음서’(Gospel of Peter)라는 문서도 시리아 지방교회에서 널리 읽혀지고 있었다. 이 문서를 비판하고 이 문서의 사용을 금지했던 이가 2세기 안디옥의 감독 세라피온(Bishop Serapion of Antioch, 197~203)이었다. 이 세라피온의 서신이 교부 문서에서 가현설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었다. 이보다 앞서 안디옥의 이그나치우스(35~117?)는 서머나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나는 육체가 없는 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역시 가현설에 대한 경계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가현설을 주창한 이는 누구였을까? 아마도 첫 인물은 사도 요한과 같은 시기의 케린투스(Cerinthus, c.50~100)와 그 집단으로 보인다. 그는 영지주의 인물로 분류되는데, 초기 기독교의 저명한 ‘이단 창시자’였다. 그는 초기 기독교 정통 교부들과는 달리 유대교 율법을 따르며, 근거가 의심스러운 ‘히브리 복음서’를 사용하였고, 하나님이 물질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라는 인간이 세례 받을 때 그 위에 임하였다가 그가 십자가상에서 죽을 때 그에게서 떠났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가현설 주창자들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베드로의 복음에서 “나의 능력이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부르짖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해석한다. 케린투스는 사도요한과 동시대인으로 사도 요한의 반대자였고, 사도 요한은 케린투스에 반대하여 요한복음을 저술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가현설 주창자들은 예수님의 인성은 완전히 허상에 불과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사실은 허상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십자가에 실제로 못 박힌 이는 구레네 시몬이었고, 예수는 안전한 처소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고 주장한다. 케린투스의 가현설은 325년에 소집된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선언되었다. 초기 교부들은 가현설을 강하게 비판했고 경계했는데, 특히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치우스(Ignatius of Antioch, c. 35~107)는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피를 쏟지 아니하셨다면 그의 죽음은 헛것이라고 말하면서, 가현설의 거짓을 기독교의 진실에 끼어 맞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가현설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이단 집단이 초기 기독교회의 그노시스파(영지지주)와 12세기의 카타리파(Cathars, Cathari)였다. 가현설은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 알렉산드리아의 콥틱정교회(Coptic Orthodox Church of Alexandria), 아르메니안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 그리고 많은 개신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독일의 진보적 신학자인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äsemann, 1906~1998)은 기독교권에서 가현설의 기원은 불확실하다고 말하면서, 1968년에 요한복음의 기독론을 ‘소박한 가현설’(naïve docetism)이라고 주장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