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개혁주의생명신학,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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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개혁주의생명신학, ‘부활’
  • 박경배 목사
  • 승인 2022.04.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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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배 목사 / 송촌장로교회 담임
송촌장로교회 박경배 목사 / 한국정직운동본부 대표
송촌장로교회 박경배 목사 / 한국정직운동본부 대표

기독교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정직하게 삽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불의에 대한 정의의 승리요. 거짓에 대한 정직의 승리입니다. 미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요. 죽음에 대한 생명의 선언입니다. 절망에 대한 소망의 선언이요. 현재에 대한 영원의 선언이며 지옥에 대한 천국의 선언입니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마 28:7). 천사의 메시지를 들은 여인들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덤의 돌문이 굴러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믿어지고 한편으로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부인도 못하고 적극적으로 믿지도 못합니다. 이것이 이 여인들의 신앙 상태입니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마 28:8). 여인들의 영적 상태는 두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큰 기쁨입니다. 왜 무서워합니까? 너무나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이런 것입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역사가 일어납니다. 

부활 신앙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역동성이 있습니다. 살아 움직입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용서하게 됩니다.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명의 변화입니다. 기독교의 사건은 죽은 사건이 아닙니다. 살아 움직이는 사건입니다. 좋게 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 보면 의심하면서 믿고 믿으면서 의심합니다.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기뻐했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여인들은 부활의 사건을 접했지만 반신반의했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부인도 못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긍정도 못합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하지만 부활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신앙이 살아났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자 확신이 생겼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나를 위한 사건으로 믿어집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내 죄 때문이라고 믿어지고 부활이 믿어집니다.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말에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부활을 지식으로 알고 믿을 때는 입술의 고백은 될 수 있었으나 능력이 없습니다. 부활이 능력이 되려면 성령 체험을 해야 합니다. 여인들은 큰 두려움과 큰 기쁨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뛰어갔습니다. 빈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갔습니다. 

신앙은 무덤을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나야 할 분은 무덤에 누워계신 예수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무덤을 떠나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돈을 떠날 수 있고 명예를 떠날 수 있습니다. 돈이나 명예의 무덤에 갇혀 살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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