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던 이사야 선지자, 애통함으로 부르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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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던 이사야 선지자, 애통함으로 부르짖어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2.04.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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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사 55:1)

대한제국의 공식적 소멸을 알리는 경술년(1910) 한일합병이 있기 5년 전인 1905년 11월 17일,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특명전권대사로 세우고 대한제국을 일본의 보호 하에 두어 외국과의 독립적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했습니다.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이 일에 비분강개하여 쓴 논설의 제목이 “오늘 목놓아 통곡하노라”는 뜻을 가진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고, 그 글에서 지금껏 우리 귀에 남은 탄식의 표현이 ‘오호’와 ‘통재’입니다.

“오호통의며 오호분의라. 아 이천만 위인 노예지동포여, 생호아 사호아. 단기 이래 사천년 국민정신이 일야지간에 졸연멸망이지호아. 통재통재라. 동포아 동포아.” 현대어로 옮기면 “아아, 원통하구나 원통하다.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 신세가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에 망하고 만단 말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정도가 될 것입니다. 오호라, 통재라! 117년이 지난 오늘, 본래 한자의 뜻을 모르는 세대의 귀에도 여전히 울리는 피맺힌 절규입니다.

이사야 55장도 ‘오호라’로 시작합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1절, 개역개정).” 오호라는 히브리어 ‘호이’라는 감탄사를 옮긴 것입니다. 공동번역, 새번역, 현대인의성경을 비롯한 수많은 현대어 역본들이 이 단어를 생략하고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와 같이 번역합니다만, 예언자의 절절한 통탄을 “오호라”에 담은 한글개역과 개역개정이 원문의 정서를 제대로 담은 번역입니다.

이사야는 무엇에 그리도 통탄했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부르는 초대를 ‘오호라’로 시작했던 것일까요? 곧바로 그 답이 나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2절).” 하나님 앞에 영원 앞에 무가치한 일들이 그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열방의 빛’으로 세우신 이스라엘이 영적 어둠 속에 살아가는 것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선지자의 가슴이 찢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호라! 통재라!

예언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애통하고 울부짖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타락하거나 곤경에 빠질 때마다 예언자의 탄식이 들렸던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 23:37).” 귀신들린 자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을 향해서도 탄식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마 17:16).”

성도는 누구나 예언자적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믿음 없음에 애통할 줄 모른다면, 세상의 거친 도전에 무력한 교회의 모습에도 가슴이 아프지 않다면, 믿음을 잃어가는 다음 세대를 보면서도 탄식할 줄 모른다면, 그런 우리야말로 사도 바울의 고백을 되뇌어야 할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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