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랬듯 더 낮은 곳으로” 봉사활동 열 시간 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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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랬듯 더 낮은 곳으로” 봉사활동 열 시간 채우기
  • 이진형 기자
  • 승인 2022.03.29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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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프로젝트 ③ 예수님의 섬김을 본받는 자원봉사 체험기

세 번째 사순절 프로젝트는 자원봉사다. 절제와 경건을 훈련하는 탄소금식, 미디어금식에 이어 이번엔 나눔과 사랑의 실천으로 사순절을 의미 있게 보내기로 했다. 목표는 봉사활동 열 시간 채우기. 우선 봉사를 의무로 해야 했던 학창시절 이후 제대로 된 자원봉사를 해 본 적이 없다는 부끄러운 현실부터 마주해야 했다. 분명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가르침을 지키며 살고자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와 가족의 안위만을 챙기기 급급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가진 것을 나누는 데에는 점점 인색해졌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어떤 봉사활동을 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아니 모른 척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작은 희생이 큰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 지난 열 시간의 자원봉사는 자꾸만 높은 곳을 향하던 시선을 낮은 곳으로 돌려놓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셨던 예수님의 시선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있었다.
 

사막에길을내는사람들은 35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들에게 점심식사를 나누고 있다.<br>
열 시간의 자원봉사는 자꾸만 높은 곳을 향하던 시선을 낮은 곳으로 돌려놓는 계기가 됐다.

영과 육을 살찌우는 양식
먼저 예전에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사단법인 사막에길을내는사람들(이하 사길사)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하기로 했다. 사길사 이사장 임명희 목사는 35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들에게 점심식사를 나누고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 찾아간 사길사 주방에서는 열 명 남짓한 봉사자들이 도시락을 포장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쌀밥 위에 먹음직스러운 제육볶음을 얹은 도시락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다.

200인분의 도시락 포장이 완성된 후 광장으로 나르는 일이 기자에게 주어졌다. 도시락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서둘러 나눠주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많은 이들을 배불리 먹이셨던 예수님의 심정이 이랬을까. 제법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쪽방촌 다리 밑에는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락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서둘러 나눠주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도시락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서둘러 나눠주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영등포역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br>
쪽방촌 다리 밑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시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서울의 노숙인 수는 3,895명으로 확인됐다.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리도 풍족한 시대에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날 무료급식을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심각한 영양 부족 상태를 겪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전염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길사는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기에도 무료급식을 중단할 수 없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대한 감사와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찬양과 말씀 선포 이후에 줄을 선 사람들에게 도시락을 차례로 전달했다.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한 사람씩 눈을 마주치며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들에게 전해진 말씀과 도시락이 굶주린 영과 육을 살찌우는 양식이 되길 기도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던 예수님처럼 살겠노라 다짐했다. 도시락을 받은 사람들은 광장 구석으로 흩어져 길바닥에 대충 앉아 끼니를 때웠다. 모두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 뒷정리까지 하고 나니 두 시간 정도 흘러있었다.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한 사람씩 눈을 마주치며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들에게 전해진 말씀과 도시락이 굶주린 영과 육을 살찌우는 양식이 되길 기도했다.

출동 ‘지구 수비대’
다음 봉사활동은 산에 오르며 쓰레기를 줍는 ‘클린 하이킹’으로 정했다. 화창한 주말, 다섯 살 아들과 함께 집 근처 용마산을 찾았다. 전날 갑자기 내린 춘설로 채비를 단단히 해야 했으나 평소 아이를 데리고 등산을 즐겨 하던 터라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물과 간식, 비상약과 보온의류를 배낭에 넣고 쓰레기를 주울 집게와 장갑, 종량제봉투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들뜬 아들 녀석을 향해 “오늘 우리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산을 깨끗하게 만드는 임무를 수행할거야”라며 ‘지구 수비대 대장’으로 임명하자 눈빛이 반짝거렸다.
 

화창한 주말, 다섯 살 아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쓰레기를 줍는 ‘클린 하이킹’을 하기 위해 집 근처 용마산을 찾았다.
화창한 주말, 다섯 살 아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쓰레기를 줍는 ‘클린 하이킹’을 하기 위해 집 근처 용마산을 찾았다.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등산이 최근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클린 하이킹’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 Out)’ 특성이 두드러지는 MZ세대 등산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친환경. ‘줍기’라는 뜻과 ‘조깅’이 합쳐진 ‘플로깅’이나 쓰레기를 주우며 산에 오르는 ‘클린 하이킹’과 같이 다양한 액티비티와 접목된 친환경 문화가 SNS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고작 쓰레기 몇 개 주워온다고 심각한 환경 오염이 해결되겠냐마는 인간의 이기와 탐욕을 반성하고 병든 지구를 치유하는 데에 작은 손길을 보태기로 했다. 어린 아들에게도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그리고 언젠가 큰 변화를 일으킬 작은 수고로움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토요일 오후 3시, 사가정공원에서 출발해 용마산 정상을 지나 중곡동으로 하산하는 3km 정도의 루트를 목표로 지구 수비대의 여정이 시작됐다. 등산로 입구부터 갖가지 쓰레기가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었다. 분명 자주 다니던 길인데 바삐 지나갈 땐 미처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를 줍기로 마음먹으니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다. “아빠 여기! 여기도!”를 외치는 대장님의 목소리가 쉴새 없이 울려 퍼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등산로 입구부터 갖가지 쓰레기가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었다.
“아빠 여기! 여기도!”를 외치는 대장님의 목소리가 쉴새 없이 울려 퍼졌다.<br>
“아빠 여기! 여기도!”를 외치는 대장님의 목소리가 쉴새 없이 울려 퍼졌다.

특히 눈에 많이 띄는 건 담배꽁초였다. 이 하얗고 조그만 유독물질 덩어리가 깊은 산 속 구석구석까지 온통 뒤덮고 있었다. 얼마 전 큰 피해를 가져온 산불이 생각나 화가 치솟았다. 사람들에게 밟혀 납작해진 담배꽁초를 끙끙대며 집게로 주워오는 아들을 보며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했다. 어린아이가 고사리손으로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본 등산객들이 “아이고, 어른들은 버리고 애들이 치우는 것 좀 봐”라며 혀를 끌끌 찼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을 한 몸에 받은 아이는 힘든 줄도 모른 채 눈에 불을 켜고 쓰레기를 찾아다녔다.

쓰레기 줍기에 온 힘을 쏟아부은 다섯 살짜리 꼬마는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결국 장렬하게 꿈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해발 348m의 나지막한 산이라고 쉽게 본 것이 잘못이었다. 깊이 잠든 아이를 들쳐 엎고 험한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묵직한 쓰레기봉투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러야 했다. 간신히 하산해서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다행히 해가 완전히 지기 전 무사히 내려왔다. 쓰레기봉투도 끝까지 사수했다. 20l 종량제봉투를 가득 채운 쓰레기들을 꺼내 확인해봤다. 휴지, 담배꽁초, 비닐포장지, 옷, 페트병, 종이컵, 나무젓가락 등 종류도 다양했다. 잠에서 깬 아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지구 수비대 임무 완료!”
 

쓰레기 줍기에 온 힘을 쏟아부은 다섯 살짜리 꼬마는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결국 장렬하게 꿈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20l 종량제봉투는 휴지, 담배꽁초, 비닐포장지, 옷, 페트병, 종이컵, 나무젓가락 등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로 가득 채워졌다.

헌혈, 가장 숭고한 나눔
남은 네 시간은 약간의 편법(?)을 택했다. 얼마 전 ‘혈액 부족이 심각하다’며 헌혈 참여를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이 생각났다. 헌혈을 하면 네 시간의 봉사활동 시간이 인정된다고 했다. 전혈 헌혈은 기간 제한이 있는데, 마침 지난 1월 초 헌혈을 한 이후 두 달이 지난 터라 가능했다. 퇴근 후 집에서 가까운 헌혈의 집을 찾았다. 충분한 수면과 식사도 잊지 않았다.
 

얼마 전 ‘혈액 부족이 심각하다’며 헌혈 참여를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이 생각났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최근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으로 헌혈이 줄면서 연초 7.5일분이었던 혈액 보유량이 3.3일분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이는 적정 혈액 보유량인 5일분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올해 헌혈 건수는 지난 15일 기준 42만7천165건으로 전년 동기간 대비 5만2천516건(10.9%)이나 감소했다. 혈액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이 없기 때문에 헌혈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혈액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수혈이 필요한 수술과 치료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심각한 위기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가 발 벗고 나섰다. 지난 20일 온누리교회(담임:이재훈 목사)는 서초구 양재캠퍼스에서 대규모 헌혈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대한민국 피로회복’ 캠페인의 일환으로 부활절인 오는 17일까지 13개 교회가 참여할 예정이다. 캠페인 관계자는 “현재 전국에서 3,000명 넘는 성도들이 헌혈한 것으로 집계된다”고 밝혔다. 

백석총회는 대한적십자사와 협약을 맺고 지난해에 이어 전 교단 차원의 ‘생명나눔 헌혈운동’을 펼친다. 지난해 백석총회는 교단 산하 7천여 교회 150만 성도가 함께하는 대대적인 헌혈운동을 펼친 결과 1,655명이 헌혈에 동참하고 2,000장의 헌혈증서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한 바 있다. 비록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결심한 헌혈이지만 사순절 기간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헌혈은 사순절 기간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평일 저녁 헌혈의 집은 매우 한산했다. 혈액 보유량을 나타내는 계기판이 위험 수준을 나타내고 있었다. 사전 문진을 하고 음료수를 한 캔 들이킨 후 여느 때보다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팔을 걷어 올렸다. 날카롭고 차가운 주삿바늘을 몸속으로 찔러넣는 행위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지만,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숭고한 사명감 때문이리라. 이전에는 헌혈을 하는 동안 스마트폰이나 책을 들여다보곤 했으나 이번엔 시간을 달리 보내기로 했다. 400ml의 피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성경을 읽었다. 그분이 흘리신 보혈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어느 때보다 가슴 깊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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