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해 못하는 참혹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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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해 못하는 참혹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2.03.29 0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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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52:13). 이사야서 마지막 ‘종의 노래’를 여는 문장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형통’으로 번역된 단어는 주로 슬기로운 판단과 행동을 지칭하며 그 판단과 선택의 결과로 오는 성공은 2차적 의미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지혜로운 선택을 내리고 높이 들리어 존귀를 얻습니다. 

그러나 53장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반전의 연속입니다. 여호와의 종이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조롱을 받다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음에 이릅니다. 오해에서 온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시리라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53:10~11)

감사할 줄 모르는 상대를 위해 콩 한 쪽이라도 내어주는 것은 손해입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예언한 여호와의 종은 거리낌 없이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존귀한 이를 볼품없다 멸시하고(2~3절), 얼마나 죄가 많으면 저렇게 호된 벌을 받느냐며 비웃는(4절) 무뢰한들을 보면서도 입을 열어 저주하지 않습니다(7절). 그가 온 백성의 죄를 대신해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8절), 그는 인정과 갈채 대신 고난과 희생의 길을 완주할 것입니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이라 묘사된 그분은 칠백여 년 후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 1:29).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정말로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고, 죄를 소멸하기 위해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분 때문에 우리가 치유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십자가상의 죽음은 무력하고 어리석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무에 달리신 그분을 다시 살리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를 흔드는 참혹한 십자가가 곧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룬 그 종에게 영광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사 53:12)

이사야가 전했던 ‘여호와의 종’이 누구신지를 이제 우리는 압니다.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분은 죄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구약 성도들은 장차 오실 그분을 기다렸지만 이제 우리는 오신 그분을 알았고,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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