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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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셋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2.03.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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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믿음의 사람으로 / 빌립보서 3:1~9 / 찬송: 407장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여기 저기 모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다양한 직업군이 있고, 다양한 삶의 문화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자신들의 울타리(각종의 법규, 전통 등)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울타리를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울타리가 구원을 얻는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 대표적으로 이런 사람들 즉 바리새인, 서기관(마 23:13), 그리고 부자청년(마 19:16~22) 등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방해하고, 떠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에게도 이 사람들 즉 바리새인의 모습, 서기관의 모습, 부자 청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 지식, 권력, 명예, 물질 등등이 주님과 만남에 장애가 되고, 주님의 선한 일에 장애가 되고, 믿음과 구원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장애물을 단호하게 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향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만으로 만족하기를 원하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며 주님의 선한 역사에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믿음의 사람으로 세상의 풍랑에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신만섭 목사 / 서암제일교회

 

화요일 / 뒤에 것을 잊어버려라! / 빌립보서 3:13~14 / 찬송: 305장

하나님의 성령이 바울 사도를 통하여 우리 삶의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뒤에 것을 잊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기억하지 말아야 될 것이 마음속에 누적되어 앞길에 방해가 될 때 먼저 그것들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마치 시냇가에 앉아 꽃잎을 따서 내버리듯이 슬픔, 원한, 미움, 부조리, 부끄러움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정죄 의식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정죄의식은 죄책감을 가져오고 죄책감은 마음속에 즐거움을 상실하게 하고 용기와 희망을 잃게 합니다. 질병을 유발케 하기도 합니다.

모든 죄책감을 예수님 앞에 내어놓고 그의 보혈로 씻음을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기억치 않으시겠다고 했으니 여러분 자신의 죄를 다 회개하고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되씹고 되씹어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어떤 일에 실패하였더라도 인생에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과거의 영광에 살지 말아야 됩니다. 사람은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목표 없이 지난날의 영광에 도취되어 살면 그 사람에게는 곧 패망이 다가옵니다. 이것들이 우리가 지금부터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앞으로 뒤에 것은 잊어버리시고 새로운 것을 붙잡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저희가 지난날의 허물을 주 안에서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붙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 주옵소서!

백대현 목사 / 위례명성교회

 

수요일 /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 요한복음 16:33 / 찬송: 405장

일부의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의 상황을 피하거나 떠나가도록 힘써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코로나를 맞이한 우리의 모습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속히 코로나가 물러가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기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런 환란 당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담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환란의 상황 아래 있을 때 피하거나 숨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대하게 환란의 상황을 대면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난의 상황을 어떻게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 환난의 상황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말씀하신 이유는 “너희로 내 안에서” 있을 때 평안함을 누리며 담대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환난은 모든 사람들이 예외없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면 환난속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담대할 수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곳으로 초대하는 곳이 바로 예배의 자리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십자가를 주목하여 환난의 상황에서도 담대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옵소서.

이우철 목사 / 율전교회

 

목요일 / 신앙의 스타일을 바꾸라 / 누가복음 8:4~15 / 찬송: 380장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은 각자의 삶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삶의 스타일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를 어느정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삶의 스타일보고 신뢰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큰일을 맡기어도 되는지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의 스타일에 따라서 축복의 열매를 거두기도하고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나의 신앙의 스타일은 어떤 스타일인지를 점검하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첫째, 늘 빼앗기는 신앙 스타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모든 것에서 빼앗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길가에 떨어져서 사람에게 밟히고. 공중의 새들이 먹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뿌리가 없는 신앙인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말씀 받을 때는 기쁨으로 받는데 핵심은 뿌리가 없는 것입니다. 뿌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시련을 당해 보면 압니다.

셋째, 눌려 사는 신앙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일어설 수 있는데 늘 눌려 있습니다. 생명이 있으면 어떤 환경도 극복해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100배의 열매 맺는 신앙의 스타일로 바꾸십시오. 열매 맺는 신앙의 스타일은 마음이 좋아야 합니다. 마음을 착하게 먹어야 합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 남을 헐뜯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오늘의 기도

삶의 열매를 맺는 신앙의 스타일을 갖게 하옵소서.

홍승훈 목사 / 금산평안교회

 

금요일 / 사모하는 심령 / 누가복음 19:1~10 / 찬송: 335장

삭개오는 큰 부자이며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상처와 깊은 외로움으로 영혼의 목마름을 안고 있었습니다. 삭개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첫째, 심령 깊은 곳에 항상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키가 작다는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서 드디어 최고가 되었습니다.

둘째, 동족인 유대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착취하는 친로마 세력이었습니다.

셋째,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목마름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날 되돌아보니 자신의 텅 빈 영혼이 보였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돌무화과나무 아래로 찾아와서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말씀은, “내가 너를 잘 안다. 너의 깊은 외로움과 상처받은 마음을 알고, 너의 사모하는 심령을 잘 안다. 오늘 내가 오늘 네 영혼을 기쁘게 하리라.”는 사랑의 말씀입니다. 삭개오의 기쁨과 놀라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위로와 평강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상처받은 영혼을 싸매어서 곤한 영혼을 다시 소생케 하시는 분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모하는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곤한 영혼이 다시 소생하는 우리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조성호 목사 / 열린문교회

 

토요일 / 감사하는 삶을 살자 / 호세아 6:6 / 찬송: 387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와 형식에 비중을 많이 둡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지나치게 형식주의에 빠지면 중심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과 정신 그리고 행동양식 및 분별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고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했듯이 지나치게 형식주의에 머무르고 있으면 아무리 경건해 보이고 거룩한 말을 하며 아름다운 찬양을 해도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성도는 예수님과 소통이 되고 지지함과 버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애라는 것은 원어로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은혜, 친절, 인자, 자비, 자애, 불쌍히 여기다’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아들 예수를 보내시고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다보니 모든 것이 육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인애, 사랑은 형식주의가 아니라 죄인이었던 나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하나님의 사랑이 축복인 것을 알아 금주에도 삶의 현장에서 지치고 힘든 일들이 있을지라도 감사하며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인애를 받은 자로서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최 선 목사 / 세계로부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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