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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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은총
  • 조성돈 교수
  • 승인 2022.03.1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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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미국의 정치학자 퍼트넘의 대표작은 ‘나 홀로 볼링’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책은 사회적 자본에 대해서 풍성한 데이터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사회적 커뮤니티의 붕괴와 소생’이다. 제목은 상당히 가볍게 정했는데, 부제는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담은 언발란스가 눈에 들어온다. 퍼트넘의 주장은 미국에서 자발적 결사체가 줄어들면서 사회적 자본 역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자발적 결사체를 그는 ‘볼링 클럽’과 같은 사적 모임으로 예를 들고 있다. 즉 사람들이 서로 모이면 연대를 갖게 되고, 그것은 개인적인 면을 넘어서 사회적 중요한 자본을 형성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사람들이 점점 볼링 클럽과 같은 모임들로 모이기가 사회적으로 힘들어지고, 개인주의화 되면서 피하게 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공동체의 붕괴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살펴보고 있다.

사회적 자본, 공동체, 그리고 시민사회라는 관점에서 퍼트넘은 상당히 비관적인 관점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앞의 책이 출간되고 10년이 지난 2011년 그는 캠벨(David E. Cambell)과 함께 앞의 분석과는 좀 다른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이번에 낸 책은 ‘아메리칸 그레이스. 종교는 어떻게 사회를 분열시키고, 통합하는가’이다. 이 책에서 퍼트넘과 캠벨은 다종교사회에서 어떻게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할 수 있는가를 조사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면은 미국에서 종교가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은 자발적 결사체라는 점이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종교인들이 비종교인들에 비해서 자원봉사나 사회적 기부에 열심’이라고 한다. 종교인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모임에 나가며 시간이 더 없고, 교회에 헌금을 하니 다른 곳에 기부하는 것을 어려워할 줄 알았는데 조사해 보니 교회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사회봉사 활동에도 열심이고,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기부도 더 많이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교회가 미국의 은총이라고 한다.

최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면서 우리는 많은 갈등을 갖게 되었다. 교회 역시 그 갈등에서 한 축을 감당했다. 사회의 갈등이 교회에서 녹아나고,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갈등을 증폭한 부분들이 있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교회가 두 정파의 주장을 많이 퍼날랐다. 그뿐만 아니라 공식채널에서 이야기하지 못할 유언비어를 교회의 공동체에서 확대 재생산해 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교회가 정치의 갈등을 그대로 껴안았다. 어떤 이들은 우리 기독교가 카톡교가 되었다고 비아냥거린다. 교인들 사이에 연결된 카톡을 통해서 믿지 못할 이야기를 많이 퍼날랐다는 이야기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그를 잡으러 온 군인들에게, 또 그를 괴롭히는 권력자들에게, 그리고 끝내 그를 십자가에 매단 로마군인들에게 순한 양처럼 구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여주셨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면 우리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번 선거를 겪으면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끝없는 증오를 퍼부었다. 악한 말과 태도로 서로를 멸시하고 조롱하였다. 그게 세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더 나아가서는 서로 믿는 이들 안에서 말이다. 선거는 지났는데 그 후유증은 아직 우리 가운데 남아 있다. 어떤 이들은 선거 결과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겠다고 한다. 아니 기독교를 떠나겠다고 공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자. 우리는 이 선거에서 무얼 원했던가? 혹시 정치적 메시야를 원했던 건 아니었는가? 그래서 그 메시야가 들어서지 못하면, 아니면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의 믿음이 완성될 것으로 본 것 아닐까? 그래서 선거를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오해한 건 아닐까? 

퍼트넘은 교회가 사회를 통합하고, 기독교인들이 사회에 이바지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바로 아메리카의 은총이라고 칭했다. 그 질문을 한국교회에 한 번 해 보게 된다. 과연 한국교회가 이 나라의 은총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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